양심이나 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인정한 대법원의 판단에는 지난 6월 대체복무제 도입을 주문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병역법 위반 사건에서 징역 1년6개월의 유죄를 선고한 판결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이는 대법원이 지난 2004년 전합 선고 이후 14년 만에 판례를 전격적으로 변경한 것이다. 대법원은 당시 헌법상 허용되는 정당한 제한으로 대체복무를 두지 않은 현행법 아래에선 처벌이 정당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헌재도 지난 2004년과 2011년 총 세 차례에 걸쳐 모두 병역거부자를 일률적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한 병역법 조항에 관해 합헌 결정을 했다.
이후 사회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둘러싼 찬반의견이 팽팽한 가운데 헌재가 먼저 그 포문을 열었다. 헌재는 지난 6월28일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5조1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내년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결정했다.
그 뒤 정부는 국방부와 병무청 등을 중심으로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본격 논의에 돌입했다. 대체복무를 할 기관과 기간 등을 정하기 위한 절차가 현재 진행 중이다.
이날 대법원이 전향적인 판결을 내놓은 것도 이 같은 사회 분위기가 한몫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헌재가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도록 한 병역법 88조1항은 합헌 결정을 했지만, 대체복무제가 도입될 경우 처벌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다만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인정할 것인지의 문제가 대체복무제의 존부와 논리필연적인 관계에 있지 않다는 다수 의견을 밝혔다.
대체복무제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했을 때 병역의무의 형평성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이 될 수 있지만, 필요조건은 아니라는 취지다. 대체복무제가 입법을 통해 도입되기 전이라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현재 대체복무제가 마련돼 있지 않다거나 향후 대체복무제가 도입될 가능성이 있더라도 병역법 88조1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에게 해당 조항이 정하는 정당한 사유가 인정된다면 처벌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이동원 대법관은 헌재 결정으로 조만간 국회에서 대체복무제 도입이 입법화될 것으로 보이며, 대체복무를 허용해도 국방력 약화나 안전보장이 우려되는 상황은 초래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안보상황과 병역의무 형평성에 대한 사회적 요청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반대한 대법관들은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는 대체복무제 도입 등을 통해 해결할 국가정책 문제임을 밝혔다.
대체복무를 포함한 국회의 개선 입법을 기다려 해결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김소영·이기택 대법관은 “헌재 결정으로 사실상 위헌성을 띈 현행 병역법 조항을 적용해 서둘러 판단할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고, 조희대·박상옥 대법관은 “병역거부자에게 국가가 대체복무 등 시혜적인 조치를 강구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무죄 선고를 가능하게 하는 해석론은 헌법에 위배되고 법리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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