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11시 33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김명수 대법원장이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승헌 씨(34)의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다는 주문(主文)을 읽자 오 씨가 환하게 웃었다. 대법정을 나온 오 씨는 기자들과 만나 “앞으로 대체복무 도입 등이 남았는데, 이것이 병역기피의 수단으로 오·남용될 수 있다는 국민의 우려가 있는 것을 안다. 우려를 없앨 수 있도록 성실히 (대체)복무를 하겠다”고 말했다.
○ “양심의 자유가 병역의 의무에 우선”
김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안철상 법원행정처장 제외) 등 13명으로 구성된 전원합의체는 ‘9 대 4’의 다수 의견으로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형사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앞서 2004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는 “처벌할 수 없다”는 소수 의견이 13명 중 1명뿐이었다. 14년이 지나 소수 의견이 다수로 역전된 것이다.
처벌할 수 없다는 다수 의견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김 대법원장과 권순일 김재형 조재연 박정화 민유숙 김선수 노정희 대법관 등 8명은 “양심의 자유가 병역의 의무에 우선할 수 있다”고 봤다.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는 헌법 제19조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기본조건이자 민주주의 존립의 불가결 전제로서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므로 양심의 자유가 병역의 의무에 우선한다고 해석한 것이다. 또 양심의 자유는 외부로 표현하고 실현할 수 있는 자유에 해당한다고 봤다. 실현 과정에서 타인의 권리나 법질서와 충돌할 수 있지만 헌법적으로 침해할 수 없는 권리라는 것이다.
이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자유를 내심(內心)에 한정한 2004년 7월 전원합의체 판결과 배치된다. 2004년 대법원이 ‘공동체와의 조화’를 우선했다면 2018년 대법원은 ‘개인의 내적 가치’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반면 이동원 대법관은 “병역의 의무가 양심의 자유에 우선한다”면서도 대체복무제 도입을 예상하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대법관은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하는 병역거부자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지우는 것은 헌법상 기본권 제한”이라고 밝혔다.
○ “‘진정한 양심’은 검사가 판단”
대법원은 다수 의견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의 조건을 ‘진정한 양심에 따른 거부’로 규정하고 진정한 양심은 전체 삶에 영향을 끼치고 좀처럼 바뀌지 않는 신념이라고 했다.
또 ‘진정한 양심’을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는 피고인이 소명자료를 제시하면 검사는 자료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진정한 양심의 부(不)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는 게 다수 의견의 판단이다. 검사가 병역거부자의 가정환경, 성장과정, 학교생활, 사회경험 등 삶의 모습을 전반적으로 살핀 뒤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소수 의견으로 ‘양심적 병역거부 유죄’ 판단을 한 김소영 조희대 박상옥 이기택 대법관은 “진정한 양심의 존재를 심사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다수 의견이 제시한 사정들은 형사소송법이 추구하는 실체적 진실 발견에 부합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2002년 일선 지방법원 판사로서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낸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받아들여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수면 위로 끄집어냈던 박시환 전 대법관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너무 오래 걸렸다. 합리적, 인권적 측면에서 빨리 결정을 내렸어야 했는데 늦게나마 그런 길을 찾게 돼 다행”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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