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은 사기에 잘 걸려드나 “男은 ‘욕망’, 女는…”

  • 주간동아
  • 입력 2018년 11월 3일 08시 03분


김영헌 서울동부지방검찰청 수사과장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전체 범죄에서 사기 건수가 해마다 크게 늘고 있다. 1973년 2만5000건 수준이던 사기 범죄 건수가 2016년엔 25만 건으로 10배 상승한 것. 최근에는 보이스피싱은 물론, 인터넷 구매 사기 등 수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갈수록 교묘해지는 각종 사기 등 속임수에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해법을 소개한 ‘속임수의 심리학’(웅진지식하우스)이 최근 출간됐다. 저자는 김영헌 서울동부지방검찰청 수사과장. 동국대 경찰행정학과와 미국 뉴욕주립대를 졸업한 그는 미국 연방수사국(FBI) 아카데미에서 심리 기반의 수사 기법을 배워 국내 수사에 최초로 도입한 25년 차 베테랑 검찰 수사관이다. 김 수사과장을 10월 30일 서울동부지검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속임수의 심리학’이란 책을 쓰게 된 동기가 있습니까.

사진 박해윤 기자
사진 박해윤 기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옆에서 보기도 했습니다. 대학 다닐 때 사이비종교 근처에도 가봤고, 다단계 판매도 합숙 직전까지 가봤으니까요.(웃음) 제가 제일 처음 당한 사기는 중학생 때 영화관에서였어요. 동시상영관이었는데 영화 상영 중간에 경품 추첨을 하더라고요. 그때 제가 카메라에 당첨된 겁니다. 카메라를 받으러 갔더니 제세공과금을 내라는 거예요. 조금 찜찜하긴 했지만 카메라를 갖고 싶은 욕심이 앞서 돈을 주고 받아왔죠. 그런데 그 카메라는 화질도 형편없었고, 얼마 못 가 고장이 났습니다. ‘당첨’이라는 말에 현혹돼 돈만 날린 셈이죠. 검찰 수사관이 된 뒤 여러 사기 사건을 수사하면서 사람들이 너무 쉽게 사기 피해자가 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기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다 책을 쓰게 됐죠. 속임수의 본질을 알면 피해를 예방할 수 있거든요.”

정치 비자금 관련 사기도 여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대표적인 사기 사건은 무엇인가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기가 ‘선급금 사기’입니다. 해외에서 우편 화물이 왔다며 운송비나 통관비 조로 돈을 요구하거나, 대출이 어려운 사람에게 신용 조회 명목으로 돈을 먼저 입금하면 대출해주겠다고 속이는 경우죠. 길거리 캐스팅을 빙자한 선급금 사기도 많습니다. 명함을 주고 유명 PD와 전화하는 척하면서 어린 학생의 신뢰를 얻은 다음, 스타가 되려면 대회에 나가야 한다면서 대회 참가비를 내게 하거나 연기학원 등록을 유도하고, 성형이 필요하다면서 성형외과를 소개해주는 것 등이죠. 최근에는 ‘취업’을 핑계로 돈을 뜯어내는 취업 사기도 많습니다. ‘괜찮은 직장을 소개해주겠다. 월급 많은 직장을 소개해주겠다’면서 먼저 소개비를 요구하는 식이에요. ‘좋은 아르바이트 소개’는 불법다단계에서 어린 학생을 유혹하는 미끼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멀쩡한 사람이 속임수에 넘어가는 이유가 뭘까요.

“속임수에는 공통적으로 세 가지 심리가 활용됩니다. ‘욕망’과 ‘신뢰’, 그리고 ‘불안’입니다. 사기꾼은 이런 심리를 악용합니다. 사기 사건을 수사하다 보면 남자는 대박을 꿈꾸는 ‘욕망’ 때문에, 여자는 주변인과 ‘관계’ 때문에 사기에 걸려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세대별로 잘 먹히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인데요. 경품 당첨은 남녀노소 상관없이 잘 먹히는데, 특히 젊은 층이 잘 넘어갑니다. 반면 장년과 노년층은 정권의 비자금 이야기에 잘 걸려듭니다. 사기꾼이 전직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을 사칭하면서 해외에 분산 예치된 거액의 정치 비자금을 국내로 들여와야 하니 도와달라며 돈을 뜯어내는 식이죠. 지난 20년 동안 서울 명동 사채시장과 종로, 강남, 여의도에서는 정권 비자금을 구실 삼은 사기가 빈번했습니다. 여전히 이런 속임수에 넘어가는 걸 보면 오래된 수법이라고 사람들이 경각심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10월 22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대통령과 청와대 고위인사를 사칭해 돈을 뜯어내는 사건들에 대해 조치를 취하라”고 특별히 지시했다. 조국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으로부터 대통령과 청와대 고위인사를 사칭한 사례들을 보고받고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사례들을) 국민에게 소상히 알리라”고 지시한 것. 문 대통령은 “대통령과 친·인척, 청와대 인사의 이름을 대고 돈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사기라 생각하고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

속임수에 넘어가는 사람의 심리를 하나씩 살펴보죠. 먼저 욕망은 사기에 어떻게 활용됩니까.

“‘비둘기 앞에 먹이 떨어뜨리기’ 수법이 대표적인데요. 비싼 물건이나 돈이 든 두툼한 지갑을 일부러 피해자 앞에 떨어뜨리고, 그것을 주운 사람을 상대로 순간적인 욕망을 자극하는 방법이죠. 생각지도 않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욕심에 눈이 멀어 경계심이나 의심이 개입할 틈을 없애는 사기 수법입니다. 속임수가 무서운 것은 별 욕심이 없던 사람에게도 욕심이 생기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다단계 판매도 욕망을 활용한 경우죠. 다단계 종사자 중 고소득을 유지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돈이 궁한 사람은 그들의 매혹적인 설명에 이끌려 다단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거죠. 그리고 욕망은 돈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터무니없이 비싼 수백만 원짜리 건강보조식품이나 건강보조기기를 판매할 때도 몸이 아픈 사람의 심리를 악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신뢰는 사기에 어떻게 활용되나요.

“일반적으로 사람은 누구나 낯선 것을 경계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모르는 전화번호나 문자메시지에는 잘 반응하지 않죠. 그런데 아는 사람에게는 경계심을 늦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는 사람에게 금융 사기를 당하는 비율이 월등히 높습니다.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 자료에 따르면 전혀 모르는 상대에게 금융 사기를 당한 경우는 12.7%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는 다 아는 사람한테 당한 거죠. 다단계도 비슷합니다. 공정거래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다단계로 빠지는 경로 중 친구 45%, 선배 33%, 후배 2% 등 80%가 아는 사람을 통해서였습니다.”

아는 사람에게 금융 사기 당한 비율 87.3%

불안 심리를 악용해 사람을 속이는 사례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인간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에 대해 더 주목하도록 진화했습니다. 특히 공포를 느끼면 그 상황에서 즉각 벗어나려고 합니다. 상실에 대한 두려움은 속임수에서 많이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예를 들면요?

“보이스피싱에서 사기꾼은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며 보호해주는 척하고는 돈을 빼내죠. 사이비 역술인도 비슷합니다. 이들은 한두 개의 단편적 이야기로 죽음이나 질병과 연결된 공포감을 조장합니다. 사람이 공포에 휩싸이면 거의 가능성이 없는 일조차 당장 일어날 것처럼 착각하죠. 누군가 죽음이나 공포심을 이기는 쉬운 방법이 있다고 유혹한다면 당신을 속이려는 시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진 박해윤 기자
사진 박해윤 기자

나를 위한 제안? 내 돈을 노린 속임수!

사기 수법은 날로 지능화되는데, 어떻게 해야 사기 피해를 예방할 수 있을까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것이 ‘왜’라고 따져 묻는 습관입니다. 누군가 고수익을 약속하면서 투자를 제의해온다면, ‘그렇게 좋은 투자처라면 자기가 직접 투자하면 될 텐데, 왜 나한테 투자하라고 할까’ 의심해보는 겁니다. 또 높은 이자를 줄 테니 잠시만 돈을 빌려달라고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행도 있고, 제2금융권도 있는데, 왜 나한테 높은 이자를 주면서까지 돈을 빌려달라고 할까’ 의심해봐야죠. 좋은 주식을 소개해주겠다며 유료회원에 가입하라고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수익성이 확실한 주식을 알고 있다면 자신이 투자해 수익을 올리면 될 텐데, 유료회원 가입을 권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 아닌가요.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진짜로 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내 돈을 노린 속임수인지 판단할 수 있을 겁니다.”

사기꾼이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나요.

“욕심 많고, 세상 물정 어두워 남의 말을 잘 믿으며, 쉽게 불안해하는 사람을 사기꾼이 좋아합니다. 비유하자면 놀부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흥부가 제비 다리를 치료해 팔자를 고쳤다고 자기도 곧바로 따라 하잖아요. 미국 거래개선협회(BBB)에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심적으로 외로운 사람’ ‘직장을 잃은 사람’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도 사기에 잘 걸린다고 합니다.”

사기꾼이 가장 싫어하는 타입은요?

“사기꾼을 인터뷰한 ‘빅콘 게임’이라는 책이 있는데요, 거기서 한 사기꾼이 정직한 사람을 속이는 게 가장 어렵다고 했습니다. 양심적이고 정직하게 살려는 사람은 사기꾼의 거짓말에 쉽게 현혹되지 않는 거죠. 눈치는 없어도 묵묵히 안분지족하며 살려고 했던 흥부 같은 유형이 사기 피해를 당할 확률이 가장 낮습니다. 그리고 꼼꼼히 따져 묻는 사람을 상대로는 사기꾼도 사기를 치지 않습니다.”

당신도 예외가 아니다

누구나 걸려들기 쉬운 대표적 사기 수법들

비둘기 앞에 먹이 떨어뜨리기

주유소에 근무하는 직원 A씨에게 손님 B씨가 다가와 화장실에서 보석을 주웠다며 주인을 찾아달라고 했다. 때마침 주유소에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보석 주인. A씨는 손님 B씨가 보석을 주워 보관하고 있다 말했고, 보석 주인은 1시간 내로 도착할 수 있다며 사례비로 20만 원을 주겠다고 했다. B씨는 A씨에게 1시간 동안 기다릴 수 없으니 사례비를 5 대 5로 나누자면서 자기에게 10만 원을 먼저 주고 나중에 보석 주인으로부터 20만 원을 받으라고 제안했다. A씨는 10만 원을 B씨에게 주고 보석을 받는다. 하지만 보석 주인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보석은 가짜였다

공짜라면 의심해보라

무료 경품 이벤트라며 스크래치 복권을 나눠준다. 제주 2박 3일 숙박권과 48시간 렌터카 이용권에 당첨된다. 이벤트 주관 여행사에 연락하자 제세공과금 9만9000원을 보내달라고 한다. 입금 후 다시 연락하면 전화를 받지 않는다.

푼돈 아끼려다 큰돈 날린다

대형 인터넷 오픈마켓에 대폭 할인된 미끼상품을 올린 뒤 별도의 쇼핑몰을 방문하게 한다. 현금거래를 하면 오픈마켓 수수료를 아껴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그렇게 거래가 이뤄지면 더는 연락이 되지 않는다.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62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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