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쥐는 돈 월 50만원”…실버택배, ‘일자리 창출’ 무색

  • 뉴시스
  • 입력 2018년 11월 4일 11시 37분


“아침에 일찍 나와야 한 건이라도 더 할 수 있지. 9시에 딱 맞춰 나오면 돈 덜 버는 거야. 나는 그래도 스마트폰을 잘 다뤄서 배달도 빨리하는 편이라 동료들보다는 많이 버는 편이지.”

지하철택배 경력 4년 차에 들어섰다는 김희석(72)씨. 김씨는 평일 오전 8시30분이면 상봉역에 도착해 배달 지시를 기다린다. 정규 출근 시간은 9시지만 일찍 들어온 주문을 바로 받아가기 위해 미리 대기 장소로 나오는 것이다.

각 지자체 내 시니어클럽들은 서울시, 보건복지부, 관할 구의 지원을 받아 2010년부터 노인 고용 활성화를 위해 어르신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지하철택배 사업단을 운영하고 있다. ‘노인 일자리 창출’이라는 고용 효과를 내세운 지하철택배는 무임승차가 가능한 만 65세 이상 노인들이 주 배달원이라 ‘실버택배’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일자리 창출’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느껴진다.

이들이 한 달 평균 벌어들이는 돈은 60~70만원 남짓. 이마저도 1인당 매달 15만원 안팎의 국가지원금이 더해진 금액이다. 운임 기본료는 6000원이다.

여기서 수행기관 운영비 명목으로 최소 15%, 최대 25%를 빼간다. 또 업무에 필요한 스마트폰 요금이 따로 지원되지 않고, 무임승차가 안 되는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할 때도 많아 손에 쥐는 돈은 월 50만원이 안 된다.

운영비는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16개의 지하철 실버택배 수행기관 사업체 대부분이 가져가고 있다. 사업단은 국비를 지원 받지만 운영은 자율적이다.

김씨는 지하철택배원으로 일하는 게 적성에 맞고 재미있긴 하지만 돈벌이로 생각하면 할 수 없었을 거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돈 벌려고 나오면 지하철 택배는 못 할 일이다. 노후가 준비된 노인들이 용돈벌이로 할 일이지 생계형 일자리로 할 만한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하루 4~5건도 배달했다지만 요즘은 하루 꼬박 일해야 2~3개 배달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기자와 만난 날 오전 8시40분께 상봉역에서 첫 배달을 지시받은 김씨가 여의도동에서 물건을 받고 배송지인 구로동까지 배달 후 본인의 대기 구역인 상봉역까지 다시 복귀하는 데에는 총 3시간이 걸렸다.
첫 주문은 대기지역에서 먼 배달이라 시간이 좀 더 걸린 편이고 일반적인 배달 시간은 1건당 2시간 정도라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배달 1건당 평균 2시간으로 잡아도 하루 8시간을 밥 먹을 틈도 없이 꼬박 일해야 4건을 배달할 수 있다.

지하철택배는 시장형 일자리 사업으로 사업장에 직접 고용되는 형태다. 근로자로 인정받아 최저임금을 보장받아야 하지만 배달 건수로 급여를 계산하는 실버택배는 정부 지원금을 합쳐도 올해 최저시급인 7530원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가는 돈을 줄이기 위해 점심식사까지 건너뛰면서 일하는 노인들이 대다수다. 그나마 들어오는 주문이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배달이라면 다행이다. 무임승차는 지하철만 가능해 버스비는 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실버택배 요금은 지하철역 개수로만 요금을 계산해 손님이 버스비를 주지 않는다면 배달원 사비로 내야 한다.

물류업 종사자라면 휴대전화는 업무상 꼭 필요한 부분이지만 사업단에서 통신비는 일절 지원해주지 않는다. 사업단 본부들이 배달 지시와 업무 상황들을 스마트폰 앱인 카카오톡을 이용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가의 스마트폰 요금을 사용하는 노인들이 많다.

적은 수입도 문제지만 열악한 고용환경 또한 지하철택배 배달원의 근로의욕을 떨어뜨린다. 하루 8시간, 주 5일을 일하면 직장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있으나 근무시간이 탄력적이라는 이유로 대부분의 사업단은 산재보험과 고용보험만 보장해주고 있다.

그나마 지정 수행기관 사업단에서 일하는 김씨의 사정은 나은 편이다.

동대문 등지에서 민간 지하철택배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인들은 국가의 지원도 없이 한 달에 40~50만원을 벌기 위해 추운 길가에서 종일 배달 지시를 기다린다.

동대문 일대에만 10여 개가 넘는 개인 지하철택배는 사무실 임대료, 관리인 월급, 중개 수수료, 운영비 등의 명목으로 배달 1건당 30%의 수수료를 가져간다. 이들의 경우 고용보험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민간 지하철택배 업체에서 일하는 A씨는 “나라에서 노인 일자리로 지하철택배를 하겠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돈이 돼야 일자리라고 하는 것 아니냐“라며 ”한 달에 50만원 겨우 버는데 점심값, 전화비 빼면 남는 것도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동대문 지역에서 지하철택배가 자리 잡은 지 십 년이 넘었지만 가격은 오히려 더 떨어졌다. 민간뿐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에서도 사업단을 구성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주문을 더 받아오기 위해선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다고 민간 지하철택배 업체 대표 B씨는 언급했다.

보건복지부와 서울시는 노인 고용 활성화를 위해 올해 기준 1인당 연간 210만원의 돈을 수행기관에 지원했다. 정부는 지하철택배 근로 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나마 시장형 일자리에서는 수익이 가장 좋은 사업 중 하나라고 밝혔다.

아파트택배로 대표되는 실버택배는 시장형 중에서도 급여가 높아 정부와 지자체의 노인일자리 사업 홍보에 많이 활용됐다. 하지만 지하철택배 한달 급여로 생계를 유지하기엔 턱없이 모자라다.

복지부 관계자는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실버택배를 포함해 시장형 사업을 중심으로 노인일자리 1만개를 늘릴 예정“이라며 ”고용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사실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지만 노인일자리 특성상 청장년 근로자 대우와 똑같이 맞추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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