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차려진 고(故) 신성일의 빈소에서 조문객을 받던 신성일의 아내이자 동료 배우인 엄앵란(82)은 오후 3시께 취재진을 만나 현재의 심정과 함께 고인의 유언을 밝혔다. 현재 건강이 좋지 않아 딸과 가족의 부축을 받은 모습이었다.
엄앵란은 3일 전에 고인을 마지막으로 봤다. 이후 자녀들로부터 고인의 유언을 전해들었다. 엄앵란은 “딸이 ‘마지막으로 할 말 없냐’고 하니, (신성일이) ‘재산없다’라고 말했다”며 “딸이 ‘어머니(엄앵란)에게는 할 말 없냐’고 물으니 ‘참 수고했고 고맙고 미안하다고 전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엄앵란은 신성일에 대해 가정적인 남자가 아닌 ‘사회적인 남자’라고 말했다. 그는 “신성일은 사회적이고 일밖에 모르는 남자라고 생각한다”며 “남편은 뼛속까지 영화인이었다. 까무러치는 때까지 영화 생각뿐이어서 가슴이 아팠다. 그렇게 버텨서 오늘날까지 많은 작품들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이어 “신성일은 대문 밖의 남자였다. 일에 빠져서 집안은 나에게 맡기고 영화만 생각한 사람이다”며 “그러니 어떤 역도 소화하고 그 어려운 시절에 많은 히트작도 내지 않았겠나. 그 외에는 (가정에는) 신경을 쓰지 못 했다”고 했다.
엄앵란은 “(신성일은) 앞만 보고 가는 사람이었고 한 가지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며 “우리 남편은 욕심이 많았다. 많은 돈을 들여서 영화를 제작했고 극장도 샀다”고 말했다.
그는 신성일의 대표작으로 ‘맨발의 청춘’을 꼽으며 “그 영화로 상도 받고 흥행도 했다. 영화 제작자로서도 위치도 확 올라갔다. 역할도 참 잘 소화했다”고 말했다.
엄앵란은 신성일을 사랑한 관객들에게도 인사를 전했다. 그는 “처음에는 TV에 사망이라고 나왔고 또 오보라고 나왔다. 그걸 확인하려고 제주도에서 전화가 왔고, 누군가는 울면서 묻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팬들의 연락을 받고 나니 많은 힘을 받았고, 우리의 가정사나 사생활 부분은 완전히 포기할 수 있었다”며 “이런 사람들 때문이라도 내가 흉한 모습 보이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엄앵란은 신성일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물음에 “저승에 가서 못 살게 구는 여자 만나지 말고 순두부 같은 여자 만나서 재미있게 살길 바란다. 구름타고 놀러다니라고 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성일은 4일 오전 2시 25분께 전남대병원에서 향년 81세 일기로 별세했다. 폐암 투병 중이던 그는 전날인 3일부터 병세가 위독해졌으며, 아들 강석현 등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으며 고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장례는 영화인장(3일장)으로 거행된다. 장례위원회는 지상학 회장과 배우 안성기가 공동 위원장을 맡았다.
빈소가 마련되자 배우 최불암, 투투 황혜영, 김동호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비롯해 원로 영화인들이 속속 도착해 조문했다.
고인의 발인은 오는 6일 오전 11시 예정돼 있다. 화장 후 유골은 고인이 직접 건축해 살던 가옥이 위치한 경북 영천 성일각으로 옮겨진다.
1937년생인 신성일은 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 후 다수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으며 60, 70년대 최고 미남 및 인기 배우로 군림했다. 1964년에는 당대 톱 여배우 엄앵란과 결혼해 화제를 모았고, 슬하에 1남 2녀를 뒀다. 지난해 6월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요양원에서 투병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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