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은 인간의 생활을 이롭게 하지만 자칫 잘못 사용하거나 한순간 방심하면 큰 피해를 일으킨다. 지난해 12월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와 1월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등 최근 1년 사이에도 많은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대구는 유독 대형 화재와 악연이 깊다. 1995년 달서구 상인동 가스 폭발과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2016년 11월 30일 중구 서문시장 화재로 4지구 상가 전체가 불에 타 상인들은 아직도 인근 대체상가에서 힘겹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서문시장 화재 2주년을 앞두고 대구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이지만 대구소방안전본부장(57)을 지난달 30일 만났다. 그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년 전 일어난 서문시장 화재 당시 국민안전처 소방상황센터장을 맡아 직접 화재 상황을 챙긴 적이 있어서 누구보다 전통시장 화재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지난달 10일 취임한 이후 주말마다 혼자 대구의 전통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이 본부장은 서문시장만 해도 벌써 수십 바퀴는 돌았다. 시장 건물마다 1∼4층 계단을 오르내리며 구석구석 소방 설비와 비상구, 방화문 등의 상태를 살폈다.
“곳곳에 의류나 이불, 솜 같은 가연물이 많이 쌓여 있어서 화재가 나면 물을 아무리 쏟아 부어도 진압이 어렵습니다. 예방과 초기 대응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현장 중심의 소방 행정이 중요하다는 그의 평소 소신은 취임식날 일정부터 반영됐다. 취임식을 약식으로 간소하게 치른 뒤 곧바로 동구 내곡동의 대한송유관공사 영남지사로 달려갔다. 취임 사흘 전인 지난달 7일 경기 고양시의 저유소 화재로 대형 위험물 저장소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 본부장은 “언제 어떤 원인으로 유사한 재난이 반복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장 먼저 저유소를 찾아 화재예방 대책과 관리 실태를 점검했다. 감시 시스템에 미진한 부분이 있어서 보강을 요청했고, 조만간 실제 화재 상황을 가정한 훈련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겨울철 소방안전종합대책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대구의 연간 화재 중 36%가 겨울철에 집중되고 있어서다. 겨울철 화재와 인명 피해 10% 감소를 목표로 재난 대응태세 확립과 예방활동 강화 등 4개 전략, 12개 실행과제를 수립했다.
특히 전통시장, 피난약자시설, 대량위험물 및 유해화학물질 취급 시설, 대형 공사장, 도시형 생활주택 806곳을 5대 취약업종으로 지정하고 단계별로 안전대책을 시행한다. 불시점검을 통해 비상구 폐쇄나 소방시설 차단 행위를 집중 단속하고, 화재 발생 시 초기에 소방력을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최고수위의 우선대응 원칙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런 유비무환의 자세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최선의 대책이 될 수 있다는 게 이 본부장의 지론이다. 지난달 12일 중구 번개시장 화재 당시 초기 대응을 잘해 점포 360여 곳 중 10여 곳만 화재가 확산되는 정도로 피해를 최소화했다. 이 본부장은 “당시 신고가 늦었음에도 관할 소방서인 중부는 물론 인근 서부와 동부, 달성군의 중앙119구조본부까지 모든 소방차량을 투입해 큰불로 번지지 않게 막았다”고 설명했다.
이 본부장은 “화재는 예방이 우선이지만 만일 발생하면 초기 진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구소방안전본부와 의용소방대, 유관단체와 합심해 선제적 재난대응 태세를 갖춰 시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온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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