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년 금단의 땅… 일제 도로-감옥 흔적 그대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5일 03시 00분


용산미군기지 버스투어 가보니
1908년 일본군이 지은 위수감옥… 붉은 담장엔 6·25때 총탄자국
서울 유일하게 복개 안된 ‘만초천’, 아치형 다리에 단풍 곱게 물들어
조선초 기우제 지낸 ‘남단터’ 눈길

2일 언론에 기지 일부가 공개된 서울 용산 미군기지. 1908년 일본군 감옥으로 세워진 당시 형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위수감옥.
2일 언론에 기지 일부가 공개된 서울 용산 미군기지. 1908년 일본군 감옥으로 세워진 당시 형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위수감옥.
1일 오전 11시 반 서울 용산구 미군기지. 투명한 창구 앞에 예닐곱 명이 줄서 있었다. 창구 너머에서 군인 두 명이 팔에 ‘한국’ 글자와 태극기 문양이 있는 견장을 단 채 방문증을 발급해 주고 있었다. 행정상으로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군 기지에 들어가는 허가를 받기 위한 줄이었다.

서울시와 국토교통부는 그동안 민간인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던 용산 미군기지를 지역주민 등 일반 시민들에게 일부 개방하는 계획을 2일 밝혔다. 본보는 하루 전인 1일 ‘용산기지 버스투어’ 코스 내 문화유산과, 철수를 앞두고 있는 기지 내부를 돌아봤다.

20여 개의 기지 출입구(Gate) 중 13번 출입구에 들어섰다. 엄격한 방문자 확인 절차는 이곳이 약 114년 동안 ‘금단의 땅’이었음을 느끼게 했다. 이곳은 1904년 일본이 조선에 주둔하는 군사령부 자리로 사용하면서부터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돼 왔다.

일본식으로 지어진 아치형 다리가 있는 만초천은 현재 서울에서 유일하게 복개되지 않은 개천이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일본식으로 지어진 아치형 다리가 있는 만초천은 현재 서울에서 유일하게 복개되지 않은 개천이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용산기지의 첫인상은 ‘한국 안의 미국’이었다. 기지 밖으로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지만 기지 내 미군 주택은 단층 혹은 2층이었다. 흰색 칠을 한 벽을 가득 채울 만한 커다란 창문이 여러 개 나있는 주택을 지나며 답사에 동행한 이들은 “이곳은 정말 한국이 아닌 미국 같다”고 입을 모았다. 용산구 관계자는 “기지 내에서는 신용카드를 긁어도 한국이 아닌 캘리포니아 주소가 찍힌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미군이 이곳을 사용하기 이전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보인다. 기지 내부 미8군 도로는 1908년 일제가 닦은 것을 그대로 확장한 도로다. 가장 대표적으로 남아있는 곳은 위수감옥과 만초천 다리다. 위수감옥은 지금은 철수한 미군 위생부대가 사용했지만 원래는 1908년 지어진 일본군의 감옥이었다. 감옥을 둘러싼 붉은 벽돌 담장은 곳곳이 크고 작은 둥근 모양으로 파여 있었다. 6·25전쟁을 거치며 생긴 총탄 자국이다. 담장 내 감옥 건물 역시 일부가 원형 그대로 보전돼 있었다. 건물의 반지하로 연결된 창문에는 일본군을 상징하는 육각별무늬 창살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복개되지 않은 하천인 만초천의 단풍은 일본의 가을 풍경을 연상케 했다. 하천을 잇는 다리가 아치형으로 쌓아올린 일본식 벽돌 다리였다. 일제강점기 보병연대의 정문으로 쓰였던 이 다리를 건너 정문 양옆의 문설주까지 그대로 남아있었다.

기지 내에는 미군과 일제강점기뿐 아니라 조선시대의 흔적까지 보존돼 있어 눈길을 끌었다. 반듯한 직사각형의 돌무더기가 ‘Do not Remove or Damage Any Portion’(이 석물을 제거 또는 파괴하지 마십시오)라는 경고 표지판과 철망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다름 아닌 조선왕조 초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남단 터’다. 구 관계자는 “지금은 향토사학자들의 연구 결과 보전하고 있지만 과거에 무엇인지 몰랐을 때는 미군이 바비큐 꼬치를 지지하는 돌로 썼다는 ‘설’도 있다”고 전했다.

미군기지는 과거 위에 쌓을 또 다른 새로운 시기를 맞고 있었다. 석 달 전만 해도 운영 중이던 맥도날드와 파파이스 등 대표적인 미국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점들은 간판을 떼고 가게를 비웠다. 서울시 관계자는 “미군이 사용하던 건물 중에 역사 문화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것은 문화시설로 보존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114년 금단의 땅#일제 도로#감옥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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