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부 시절 발생한 ‘윤필용 사건’ 당시 고문 끝에 강제전역을 당한 육군 대령에게 법원이 부당한 전역이었다는 건 인정했지만, 소멸시효가 지났기에 손해배상은 받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부장판사 유석동)는 1973년 육군 대령으로 전역한 황모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5일 밝혔다.
윤필용 사건은 1973년 4월 윤필용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소장)이 술자리에서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노쇠했으니 형님이 후계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가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의혹을 받은 사건이다.
이 일로 윤 전 소장은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이등병으로 강등돼 옥살이를 하다 1975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됐다. 그와 가까운 장교들도 대거 군복을 벗고 쫓겨났다.
당시 이 사건에 연루된 황 전 대령은 육군 보안부대에서 ‘윤 전 소장으로부터 받은 지령이 무엇이냐’고 추궁받으며 전기고문과 물고문, 구타 등에 시달렸다. 그는 ‘예편원을 쓰지 않으면 여기서 나갈 수 없다’는 말에 전역지원서를 썼다.
이후 황 전 대령은 2016년 “의사결정의 자유가 박탈된 상태에서 전역 지원서를 작성했기에 전역 처분은 무효”라며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내 지난해 승소했다. 그는 행정소송에서 승소하자 서울중앙지법에 “공무원들의 불법행위로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4억4000만원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당시 수사관들은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않았고 고문과 폭행, 협박을 자행하는 등 고의로 불법행위를 했다”며 국가가 황 전 대령에게 손해배상을 할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손해배상을 청구할 시효가 이미 지났기에 황 전 대령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소멸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권은 피해자가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를 한 날부터 5년이 지나면 소멸한다”며 “수사관들의 불법행위는 1973년에 있었는데 황 전 대령은 올해 3월에야 소송을 제기했기에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설명했다.
‘전역무효 소송의 승소가 확정되기 전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었다’는 황 전 대령 측의 주장에 대해선 “이후 재심을 청구해 무죄를 선고받은 다른 피해자들도 많았고, 황 전 대령도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박정희 독재 정권이 끝난 1980년 이후부터 (40여년 동안) 황 전 대령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데 장애 사유가 있었다고 보긴 어렵다”며 “전역처분 무효를 청구한 행정소송과 별개로 국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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