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의사 등 전문직 여성 절반이 직장 내 성폭력 피해

  • 뉴스1
  • 입력 2018년 11월 5일 18시 26분


여성변회 설문조사…70%는 당하고도 항의 못 해


# 인턴 때 지도검사로부터 성희롱을 당했습니다. 어린 여자 인턴들만 따로 불러내서 회식을 하면서 자신의 성생활 이야기를 늘어놓고 ‘너희들과 해도 내가 체력적으로 부족함이 없다’ 등의 성적 농담을 했습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하면 그 때 적절히 항의하지 못한 것이 매우 후회스럽고 화가 납니다.(A변호사)

# 인턴으로 근무하던 시절 총괄 레지던트인 선생님이 밥을사주겠다고 나오라고 불렀다. 내가 당직인데도 자꾸 권해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시게 됐고, 차 뒷문으로 갑자기 잡아 끌어 만지기에 ‘이러지 마세요’라고 말했는데 갑자기 정신을 잃었다. 이후 침대에 던져지는 느낌이 나고 가해자가 삽입을 했다.(B의사)

# 가해자는 나보다 3~4년 먼저 입사한 선배기자였고, 나는 회사에 잘 적응하고자 하는 마음에 선배가 술자리로 부르는 족족 나갔다. 그날 매우 빠른 속도로 폭탄주를 주는 대로 마시다가 내 주량을 초과했다. 사람들이 주위에 있는데도 가해자는 내 셔츠사이로 손을 넣어서 엄지손가락으로 가슴을 만졌다.(C기자)

변호사·의사 등 전문직 여성의 절반이 직장에서 성폭력 피해를 겪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가해자의 70%는 피해자보다 상급자였고, 피해자의 70%는 성폭력을 당하고도 ‘불쾌하다’는 의사를 표시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5일 한국여성변호사회는 변호사·의사·기자·교수·회계사 등 전문직 여성 1015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509명(50.1%)이 직접 피해를 겪은 사실이 있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유형별(복수응답)로는 ‘외모·옷차림·몸매 등을 성적으로 희롱·비하·평가하는 행위’를 겪었다고 답한 응답자가 53.3%(541명·간접경험 포함)로 제일 많았다.

‘음담패설’을 겪었다는 응답자는 540명(53.2%·간접경험 포함), 고의로 신체를 건드리거나 몸을 밀착하는 행위를 겪었다고 답한 응답자는 497명(49.0%·간접경험 포함)으로 그 뒤를 이었다. 상대방이 성기를 노출하거나 만지는 행위를 직접 겪은 사람도 16명이나 있었다.

가해자(복수응답)는 ‘상급자 또는 선배’가 350명(42.8%), ‘고위직(임원)’이 116명(14.2%), ‘부서장’ 103명(12.6%)으로 응답해 피해자보다 상급자인 경우가 70%에 달했다. 성폭력 행위가 발생한 장소는 ‘회식’ 396명(46.0%), ‘직장 내’ 226명(26.2%), ‘야유회·워크숍 등 직장행사’ 87명(10.1%) 순이었다.

대처방법의 경우 ‘모르는 척하거나 슬쩍 자리를 피했다’는 응답자가 270명(29.0%)으로 가장 많았다. ‘농담으로 웃어넘기거나 분위기에 동조하는 척 했다’는 응답자는 206명(22.1%), ‘별다른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응답자도 180명(19.3%)이나 돼 ‘불쾌하다’는 의사를 표시하지 못한 피해자가 70.4%에 달했다.

대처를 하지 못한 이유로는 ‘당황해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라고 답한 응답자가 188명(27.1%)으로 가장 많았다. ‘분위기를 깰까봐’라는 응답자는 133명(19.2%), ‘업무상 불이익이 있을 것 같아서’라는 응답자는 121명(17.5%), ‘상대방과 관계가 서먹해질 것 같아서’라는 응답자는 113명(16.3%) 순이었다.

해결책을 묻는 질문에 한 여성 변호사는 “사소한 성희롱 등의 문제를 제기해도 업무상 아무런 불이익이 없었으면 한다”고 답했다. “성희롱, 성폭력 피해가 발생했을 때 이를 공론화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답한 여성 변호사도 있었다.

대책 제안을 발표한 임유정 변호사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폭로에 가세해야만 상황이 개선될 것인지 안타깝다”며 “여성과 남성 모두 안전하고 건강하게 노동권을 행사할 수 있는 건강한 근로환경을 만들기 위한 중요한 한 걸음이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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