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을 기르는 사진작가 장모 씨(37·여)는 3년 전 집안에 중국산 폐쇄회로(CC)TV를 설치했다. 장 씨가 집을 비운 동안 혼자 집에 남아 남아 있는 반려견이 걱정돼서다. 외출이 잦은 장 씨는 항상 CCTV를 켜놓는다. 하지만 누군가 CCTV를 해킹해 훔쳐보지 않을까 불안하다. 그래서 귀가 후에는 손수건으로 렌즈를 덮어둔다. 장 씨는 “옷차림이 가벼운 여름에는 더욱 신경이 쓰여 렌즈를 꼼꼼히 가린다”고 말했다.
● 스마트폰 뒤집어 놓고 노트북 웹카메라에는 반창고 붙여
집안에 놓인 가전제품에 달린 카메라 렌즈가 사생활을 유출하는 용도로 악용될까 우려하는 ‘렌즈 포비아(공포증)’가 확산하고 있다. 정보통신(IT) 기술의 발달로 휴대전화, PC는 물론 로봇 청소기·비디오 게임기 등 일상에서 쓰이는 각종 전자제품에 렌즈가 포함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이를 악용한 ‘원격 몰카(몰래카메라)’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일부 시민들은 장 씨처럼 나름의 자구책을 세우며 원격 몰카에 대비한다. 직장인 조모 씨(27·여)는 평소 스마트폰 액정이 바닥을 향하게끔 뒤집어서 놓는다. 주변에서 ‘스마트폰의 전면 카메라는 해킹당하기 쉽다고 하더라’는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들은 뒤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생긴 습관이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김모 씨(24·여)는 수년 전부터 개인용 노트북의 웹카메라에 반창고를 붙여 놓고 사용하고 있다. 전공 특성상 노트북을 열어둔 채 지낼 때가 많은데 혹시나 해킹 피해를 당하게 될까 봐 하는 생각에서다.
이런 걱정은 기우(杞憂)가 아니다. 가전제품 해킹으로 인한 실제 피해 사례가 적지 않다. 경찰은 1일 반려동물을 관찰하기 위한 홈 CCTV를 해킹해 여성 5000여 명의 사생활을 엿보보고 불법 촬영한 일당 1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지난해에는 가정·영업용 매장의 IP카메라 1400여 대를 해킹해 여성이 옷을 갈아입는 모습 등을 엿보고 영상을 유포한 일당이 경찰에 적발됐다.
유명인을 특정한 해킹이 일어나기도 있다. 한모 씨(23)는 2015년 아프리카TV 인기 방송진행자(BJ)의 PC 웹카메라를 해킹해 사생활을 훔쳐보고 이를 온라인에 게시한 혐의가 인정돼 항소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이 선고됐다.
● 사물인터넷(IoT) 확산, 가전제품 해킹 가능성↑
전문가들은 “인터넷에 연결된 모든 기기가 사실상 해킹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셈”이라고 말한다. 일상에서 사용되는 가전제품도 예외가 아니다. 스마트폰의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와이파이에 연결된 로봇 청소기의 동선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거나 냉장고 안의 식료품을 체크하는 사물 인터넷(IoT) 기술이 보급됐기 때문이다.
해커들은 보안이 취약한 곳으로 침투해 가전제품에 악성코드와 해킹 프로그램을 심는다. 해킹에 성공하면 기기를 원격으로 조종하거나 렌즈를 통해 이용자의 사생활을 훔쳐볼 수 있다. 보안 전문가들은 수년 째 보안 콘퍼런스 등을 통해 가전제품의 해킹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로봇 청소기를 해킹해 촬영한 영상을 외부로 전송하는 시연도 2014년 한 보안 콘퍼런스에서 시연된 바 있다.
때문에 가전제품 보안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가정용 인터넷 공유기와 가전제품의 비밀번호를 복잡하게 설정해 두는 것이 첫 번째다. 자동으로 설정된 기본값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면 해킹을 당할 위험이 높다. 보안 성능을 높일 수 있도록 제품의 펌웨어를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는 것도 해킹 예방이 도움이 된다.
제품을 선택하는 단계에서부터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승주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 교수는 “제품마다 보안 품질에 확연히 차이가 있지만 시민들은 그런 데 둔감해 저렴한 제품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며 “시민들이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제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정부와 시민단체가 ‘안심 제품’을 선정해 알려준다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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