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가 5일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확대하기로 합의하면서 경영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올해 7월 시행된 주 52시간제의 보완책으로 꼽히는 탄력근로제 확대안이 연내에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하지만 ‘총론’이 아닌 ‘각론’으로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확대 기간과 도입 방법 등 세부안을 두고 여야와 노사 간 주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정부 투쟁을 예고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등 노동계 반발을 여권이 넘어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탄력근로제란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법정 근로시간(주 40시간+연장 12시간)에 맞으면 업무량에 따라 근로시간을 늘리거나 줄이는 것을 허용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업무가 많은 주는 60시간 일하는 대신에 업무가 적은 주는 44시간만 일하면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52시간이 돼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처벌받지 않는다.
문제는 현행법상 3개월 내에서만 근로시간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어 실제 기업의 활용도가 매우 낮다는 점이다. 아이스크림이나 냉·난방용품 등 계절에 따라 수요가 급변하는 제조업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탄력근로제 기간은 2003년 9월 1개월에서 3개월로 한 차례 늘어난 뒤 15년째 그대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탄력근로제 도입률은 3.4%에 불과하다. 경영계는 탄력근로제 기간을 최대 1년까지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단 여야정이 탄력근로제 기간을 6개월∼1년으로 늘리기로 합의한 만큼 기간 연장에는 합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문제는 ‘6개월’과 ‘1년’ 사이의 간극이다. 여당은 노동계 반발을 고려해 ‘6개월’을 고집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야당은 주 52시간제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급적 1년까지 넓히자고 주장하고 있다.
여야가 합의해야 할 핵심 쟁점은 또 있다. 탄력근로제를 2주 단위로 운용할 경우에는 노조 동의 없이 시행할 수 있다. 하지만 2주를 넘겨 운용하려면 노조나 근로자 대표와 문서로 합의해야 한다. 탄력근로제 기간을 아무리 늘려도 ‘강성 노조’가 버티면 시행 자체가 불가능한 셈이다. 경영계는 노사 합의 없이 탄력근로제를 시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여당은 노동계의 반대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세부안을 두고 여야가 공방을 거듭할 경우 탄력근로제 확대 자체가 물거품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노총 등 노동계는 이번 합의를 개악(改惡)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대정부 투쟁을 예고한 상태다. 이달 21일 총파업을 선언한 민노총은 다른 시민단체와 연대해 12월 1일 민중대회도 열 계획이다. 한국노총 김주영 위원장은 6일 취임 인사차 한국노총을 방문한 임서정 고용부 차관을 만나 “사회적 대화의 핵심은 신뢰인데 (정부의) 일방적 행보는 사회적 대화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며 강하게 항의했다.
노동계가 반발하는 건 탄력근로제를 확대하면 근로자의 초과근무수당이 줄기 때문이다. 정부는 탄력근로제 확대와 함께 근로자의 임금 보전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경영계가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 정부로선 진퇴양난이다. 성균관대 조준모 경제학부 교수는 “이해관계자들이 양보하는 수준으로 탄력근로제 기간을 정하면 정작 현장에 적용하기 힘들어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며 “정부가 중심을 잡고 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쪽으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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