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군 하의3도 ‘농지탈환운동희생자 위령제’ 열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8일 03시 00분


하의3도 농지탈환운동희생자 위령제가 7일 전남 신안군 하의면 농민운동기념관에서 열렸다. 신안군 제공
하의3도 농지탈환운동희생자 위령제가 7일 전남 신안군 하의면 농민운동기념관에서 열렸다. 신안군 제공
제10회 하의3도 농지탈환운동희생자 위령제가 7일 전남 신안군 하의면 농민운동기념관에서 열렸다.

하의3도 농지탈환운동기념사업회(회장 김수현) 주관으로 열린 위령제는 추도사와 추모사 낭독, 헌화, 분향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하의3도 농지탈환운동의 발단은 1623년 조선 인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조는 선조의 딸 정명공주와 결혼한 명문가 자손에게 하의도와 신의면 상태도, 하태도 등 3개 섬의 땅 26만 m²에서 4대 후손까지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한을 줬다.

1729년 5대에 이르렀어도 세금 징수권은 반환되지 않았고 오히려 이 세도가는 당초 인조에게서 받은 땅의 6배나 되는 165만 m²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다. 주민들은 한양까지 올라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도리어 핍박만 받았다. 이후 일제강점기까지 세도가와 일본인 지주 등 6명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1914년 2월 20일 일본인 재벌 우콘 곤자에몬(右近權左衛門)이 강압적으로 땅을 빼앗으려 하자 농민 1000여 명이 목포재판소와 경찰서가 있는 해변에 솥을 걸어 놓고 농성을 벌이며 항거했다. 이때 수백 명이 체포되기도 했다. 1949년 억울한 사연을 제헌국회에 탄원했고 국회가 1950년 2월 소유권 무상반환을 결의한 지 6년 만인 1956년 비로소 농지 이전이 이뤄졌다.

하의3도 농민운동기념관은 농민의 목숨을 건 농지탈환 역사를 기리기 위해 2009년 개관됐다. 612m² 규모의 1층 건물로 종합안내센터, 정보검색실, 토지항쟁기념실, 농경문화실 등을 갖췄다. 기념관 앞에는 8m 높이의 농민운동기념탑과 빼앗긴 농지를 333년 만에 찾은 것을 기념하는 최하림 시인의 시비(詩碑)가 있다.

김학윤 하의3도농지탈환운동기념사업회 명예회장(82)은 “당시 일본인 지주를 상대로 한 생존권 투쟁은 항일농민운동으로 발전하는 기폭제가 됐다”며 “이런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매년 학생 글짓기 대회와 추모행사 등 다양한 선양사업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하의3도#농지탈환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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