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새벽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3층에서 불이 나 거주자 7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대부분 일용직 근로자, 기초생활수급자 등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던 피해자들은 5∼10m²(약 1.5∼3평) 남짓한 방에서 자다가 참변을 당했다.
이들이 “불이야”라는 소리에 방 밖으로 나왔을 때 유일한 탈출 통로인 출입구는 불길로 막혀 있었다. 출입구와 가장 가까운 방에서 불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지은 지 35년 된 건물에 비상구는 없었다. 아비규환의 상황에서 완강기는 무용지물이었다. 일부 거주자만 불에 달궈진 가로 60cm, 세로 30cm의 창틀 사이로 빠져나와 배관 등을 타고 탈출했을 뿐이다.
올 1월 종로구 쪽방여관 화재 때도 투숙객들은 자물쇠로 잠긴 비상문과 쇠창살이 설치된 창문에 가로막혔다. 일용직, 퀵서비스 배달원 등 6명이 숨졌다. 이후 저소득층 숙소의 화재 안전이 도마에 올랐지만 10개월 동안 달라진 건 없었다.
소방 당국과 경찰에 따르면 불은 이날 오전 5시경 고시원 301호실에서 시작됐다. 이 방에 사는 박모 씨(72)가 쓰던 전기난로에서 불이 났다. 3층은 폭 1m 남짓의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방 29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경찰은 “박 씨가 이불로 불을 꺼보려다 불이 이불로 옮겨붙자 탈출했다. 방문이 열려 있어 확산이 빨랐다”고 밝혔다.
이 고시원 건물에는 스프링클러가 없다. 현행법상 2009년 7월 이전부터 운영된 고시원은 설치 의무가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 고시원은 2015년 서울시의 고시원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다. 하지만 건물주가 동의하지 않아 설치가 무산됐다”고 밝혔다. 비상벨은 불길이 가장 거셌던 출입구 쪽에 있어서 아무도 누르지 못했다. 방마다 설치된 화재경보기에서도 경보음이 울리지 않았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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