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의 한 고시원 3층. 거주자들이 복도에 널어놓은 빨래 사이로 초록색 비상구 표시가 어렴풋이 보였다. 하지만 말만 비상구일 뿐 문을 열어 보니 밖으로 대피할 계단은 없었다. 성인 2, 3명이 서 있을 만한 크기의 철제 발코니만 덩그러니 있었다. 이날 화재가 난 국일고시원처럼 출입구가 불길로 막히면 꼼짝없이 화마에 갇히는 구조였다.
본보가 이날 살펴본 서울 종로구 일대의 노후 고시원 6곳은 대피로조차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 2곳에는 비상구가 아예 없었고, 2곳은 비상구 문이 잠겨 있어 비상구를 이용할 수 있는 고시원은 2곳에 불과했다.
건물 5층에 위치한 한 고시원의 비상구 문을 열자 창문과 내부형 완강기가 있었다. 하지만 창문에 테이프가 겹겹이 붙어 있어 열기 어려웠다. 객실 50여 개가 있는 다른 고시원에는 철제 비상계단이 있었지만 평상시에도 쉽게 내려갈 수 없을 만큼 가팔랐다.
또 대부분 방 안의 작은 불씨가 건물 전체로 옮겨붙기 쉬운 벌집형 구조였다. 관수동의 한 고시원에는 5m²(약 1.5평) 남짓한 객실 30개가 50cm 간격으로 붙어 있었다. 고시원 운영자 김모 씨(50·여)는 “이곳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며 “슬레이트나 석고로 방을 여러 개로 쪼갠 곳들이 있는데 그런 곳에선 목숨을 내놓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낙원동의 한 고시원에는 창고 깊숙한 곳에 먼지 쌓인 소화기가 놓여 있었다. 제조연도는 2004년. 소화기는 제조 후 10년이 지나면 교체하거나 점검을 받아야 하지만 그런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렇다 보니 고시원에서 작은 화재만 일어나도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3년부터 올해 10월까지 고시원에서 310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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