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암표의 계절입니다

  • 주간동아
  • 입력 2018년 11월 10일 18시 34분


암표…오프라인은 불법, 온라인은 합법?


야구장 관중석이 일부 비어 있는 모습. 예매 열기가 치열한 경기라도 암표상들이 대거 환불해 빈 좌석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뉴스1]
야구장 관중석이 일부 비어 있는 모습. 예매 열기가 치열한 경기라도 암표상들이 대거 환불해 빈 좌석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뉴스1]

야구팬 박정우(26) 씨는 올해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티켓을 구하지 못했다. 대학 수강신청처럼 필요한 자리는 빠르게 사라졌다. 친구에게 물어봤지만 구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얼마 전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국시리즈 1차전 티켓을 구할 수 있다는 것. 다만 가격이 정식 판매가의 2배가량인 암표였다. 학생이라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박씨는 티켓을 포기했다. 그는 “보러 가지도 않을 사람이 티켓을 사는 것보다, 그 경기가 정말 보고 싶은 내가 사는 편이 더 낫지 않나. 이럴 때마다 암표 단속이 필요한 것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하지만 암표 단속은 쉽지 않다. 일단 잡기가 어렵다. 잡아도 인터넷 판매는 처벌이 어렵다. 처벌해도 벌금을 내는 정도인데, 암표 판매로 얻는 수익이 벌금을 상회한다.

○ 2배 가격은 양심적 수준

암표상에게도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여름과 달리 가수의 공연과 대형뮤지컬,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등 큰 시장이 열리기 때문. 스포츠 경기, 콘서트, 뮤지컬 티켓이 전부 팔리면 바로 장이 선다. 온라인 티켓마켓 ‘티켓베이’ ‘스텁허브’는 물론이고, 중고물품은 모두 판매한다는 ‘중고나라’에도 판매 글이 빗발친다.

암표를 어떻게 구하는지 직접 알아보기로 했다. 목표는 장당 6만 원인 한국시리즈 6차전 3루 측 좌석 2장. 일단 2장을 파는 사이트를 찾는 것도 일이었다. 1장을 파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가격도 천차만별. 장당 10만 원을 부르는 곳은 그나마 양반이었고, 12만 원이 정가 취급을 받았다. 그래도 최대한 싼 곳을 찾아보자는 생각에 40분 동안 검색을 거듭했고 결국 2장에 22만 원짜리 암표를 파는 판매자와 연결될 수 있었다.

기자가 암표를 사겠다고 하자 판매자의 첫 질문은 “모바일 양도 받아보셨어요?”였다. 모바일 양도 과정이 생각보다 복잡하기 때문. 인터넷에서 암표를 구매할 경우 실제 티켓이 오가지 않는다. ‘모바일티켓’ 등 애플리케이션(앱)의 선물하기 기능을 활용한다. 구매자가 판매자의 계좌로 돈을 입금하면 판매자가 확인한 뒤 카카오톡 메신저에 구매자의 휴대전화번호를 입력해 티켓을 선물하는 것. 이때 티켓을 선물 받은 구매자의 카카오톡 메신저에는 일련의 코드가 전송된다. 이 코드를 ‘모바일티켓’ 앱의 선물 받기 탭을 열어 입력하면 선물하기 절차가 끝난다. 다른 티켓도 대부분 이러한 과정을 거쳐 판매된다.

최근 암표가 많은 분야는 뮤지컬이다. 티켓 가격은 공연의 종류와 날짜, 그리고 어떤 배우가 출연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알아본 공연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로, 배우 조승우가 주연인 회차의 티켓 2장이었다. 좌석은 가장 저렴한 A석이었는데 일반 구매 시 장당 6만 원이었다. 주말 공연은 암표도 찾기 어려워 평일 공연으로 눈을 돌렸다.

가격을 2배가량 예상했으나 훨씬 비쌌다. 한 시간 정도 여러 티켓 리셀(resell) 사이트를 뒤졌지만 가장 싼값이 2장에 34만 원, 장당 17만 원이었다. 이 가격에도 없어서 못 파는 수준이었다. 빠르게 판매 글이 내려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팬들의 불만이 크다. 뮤지컬 팬 홍모(34·여) 씨는 “이럴 거면 아예 티켓 가격을 처음부터 올려 받았으면 좋겠다. 가격이 비싸면 티켓 예매 경쟁이 줄어들고, 그 돈 덕분에 시장이 더 커져 좋은 공연을 볼 수 있겠지만, 지금은 공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암표상이 돈을 버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나마 이 정도 가격의 암표는 양심적인 수준이었다. 유명 아이돌그룹 콘서트의 암표 가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바른미래당 김수민 의원실에 따르면 10월 열린 H.O.T. 콘서트 티켓은 정상가의 10배인 150만 원에 팔렸고, 8월 열린 방탄소년단(BTS) 서울콘서트 암표는 정상가의 30배(320만 원)였다.

○ 암표상 욕하면 명예훼손 소송 걸릴 수도

팬들의 질타 목소리가 높지만, 암표상은 당당하다. 이들은 인터넷 암표 판매가 불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경범죄 처벌법’ 제3조 2항이 인정하는 ‘암표 판매’의 범위는 경기장, 공연장 등 현장에서 암표를 판매하는 행위다. 적발 시 2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넓은 공연장에서 암표상을 찾는 것이 워낙 힘드니 단속은 어렵다. 여기에 온라인 판매에 대한 규정도 없어, 온라인으로 암표를 파는 것은 처벌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도 이 같은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해달라는 내용의 게시물이 빗발친다.

힙합가수 허클베리피(박상혁)와 한 누리꾼 사이의 논쟁이 화제가 됐다. 공연하는 가수가 암표상을 비판했는데, 적반하장 격으로 암표상이 가수를 공격하고 나선 것이다. 암표상 A씨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허클베리피의 공연 티켓을 4만 원 웃돈을 얹어 판매하겠다는 글을 게시했다. 이것을 본 허클베리피가 해당 게시물을 캡처해 자신의 SNS에 비판하는 내용을 남겼다. 그는 ‘1년에 한 번 열리는 단독 공연을 기다리는 팬들이 있다. 그 마음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암표상들에게는 어떤 욕을 해도 모자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A씨는 이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나섰다. 그는 SNS에 ‘주최자가 티켓 리셀링에 이의가 있는 경우 공식 예매처의 이용약관에 따라 계약 취소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절차를 무시한 채 연예인이라는 지위를 악용, 팬덤을 동원해 특정인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행위는 아주 엄격히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이와 관련해 가수 박씨를 상대로 법적 절차를 검토 중에 있다’는 입장문을 내걸었다.

실제로 아이돌 팬덤 인터넷 게시판이나, 프로 스포츠 팬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암표상을 공개 비난했다 명예훼손 등 소송에 휘말렸다는 사연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암표상이 암표를 판 것이 사실이라도 커뮤니티 사이트 등 파급력이 큰 곳에서 암표상을 공개 비난하는 행위는 위험하다”고 말했다.

암표상은 스포츠 경기나 공연뿐 아니라 영화 무대인사나 팬미팅, 입장료가 무료인 시상식, 연예인이 대거 출연하는 대학 축제 티켓까지 취급한다. 연세대 축제 때 학생들에게 1만3000원에 판매한 입장권의 암표 가격이 10만 원 가까이 치솟기도 했다. 건국대 총학생회는 재학생들에게 공연 시작 3시간 전 입장할 수 있는 우선 입장권을 무료로 배포했다. 역시 최고 6만 원가량에 판매됐다.

무료 공연까지 암표가 성행하자 국회에서도 암표 척결을 위한 법안이 발의됐다. 경범죄 처벌법 개정안을 통해 인터넷으로 티켓을 매점매석한 뒤 되파는 행위를 처벌하거나, 암표 거래 자체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계류돼 있을 뿐 실제 통과된 법안은 없다.

아이돌 팬덤이나 스포츠 팬들은 설령 법 개정이 이뤄진다 해도 암표 척결은 힘들 것이라고 본다. 암표시장에서 조직적인 활동이나 매점매석이 자취를 감추고 있기 때문. 이는 티켓 판매 업체나 공연, 스포츠계의 암표 방지책 덕분이다. 과거에는 매크로 등 자동 프로그램을 통해 한 사람이 티켓 수십 장을 구매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 사람이 살 수 있는 티켓 수가 제한돼 있다. 이에 한 공연의 티켓을 사재기해 판매하는 전문 ‘꾼’은 많이 사라진 상태.

암표 거래상과 기자의 대화 내용. 암표 거래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암표 거래상과 기자의 대화 내용. 암표 거래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 전매 어려워도 암표는 성행한다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티켓을 확보하는 것도 어렵다. ‘안심예매 보안문자’ 등 자동 프로그램을 막는 방법이 도입됐기 때문이다. 무작위로 화면에 보이는 문자를 입력해야 하니 자동 프로그램 사용이 어렵다. 현재 예매 시스템에서 사용할 수 있는 매크로는 마우스 커서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프로그램이다. 굳이 손으로 마우스 커서를 움직이지 않아도, 커서가 자동으로 다음 단계 탭이 뜰 위치로 이동해 있는 식이다. 물론 1~2초에 희비가 갈리는 티켓 예매의 세계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크다. 일부 암표상은 이 같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판매해 부수입을 얻기도 한다.

많이 살 수도 없고, 사기도 어려우니 암표상은 여러 공연의 티켓 예매에 도전한다. 이 중 하나라도 걸리면 최소 2배 가격에 판매할 수 있으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만약 팬덤이 암표 불매운동을 벌여 암표가 1장도 팔리지 않아도 암표상이 금전적 손해를 볼 일은 없다. 공연(혹은 경기) 전날까지 취소해버리면 해당 금액을 고스란히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연방법을 통해 불법 매크로와 관련된 암표만 처벌하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암표상이 기승을 부린다. 최근 방탄소년단의 로스앤젤레스(LA) 콘서트 암표가 400만 원 넘는 가격에 팔리기도 했다.

일부 암표상은 이를 ‘표테크’(표+재테크)라 부르며 팁을 공유하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암표 판매 경험자는 “투자금을 잃을 리 없고, 최소 2배가량 수익이 보장되니 뛰어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어려운 티켓 예매를 대신해주는 것이니, 그것에 대한 성공 보수라 생각하면 나쁜 짓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암표를 막을 수 없다면 폭리라도 막자는 전략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해 ‘KBO Resale’이라는 공식 티켓 리세일 앱을 출시했다. 리세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정상가의 30% 수준. 하지만 암표를 활성화한다는 비판을 받자 철회했고, 지금은 정상가에 양도만 가능하다.

1 암표상을 막기 위해 티켓 예매가 복잡해지자 이를 연습하는 게임도 출시됐다. 2 기자가 구매한 한국시리즈 6차전 암표의 판매 글. 정상가 12만 원인 좌석이 22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 3 KBO 공식 티켓 리세일 앱.
1 암표상을 막기 위해 티켓 예매가 복잡해지자 이를 연습하는 게임도 출시됐다. 2 기자가 구매한 한국시리즈 6차전 암표의 판매 글. 정상가 12만 원인 좌석이 22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 3 KBO 공식 티켓 리세일 앱.

○ 피해는 소비자가 본다

프로 스포츠에서는 간혹 이상한 일이 생긴다. 온라인 티켓이 매진됐는데 정작 경기장 관중석은 비어 있는 경우다. 암표상들이 온라인 티켓을 사들였다, 팔리지 않는 티켓을 전부 환불해버렸기 때문. 올해 초 평창동계올림픽에 남북단일팀으로 출전한 여성 아이스하키팀의 경기에서 비슷한 일이 생겨 화제가 됐다. 공연계에서도 이 같은 일은 비일비재하다. 공연계 관계자는 “평일 공연이 매진되면 불안하다. 아니나 다를까, 10번 중 5~6번은 빈자리가 눈에 띌 정도로 많이 생긴다. 부랴부랴 현장 판매에 나서지만, 평일 공연에 그 표를 다 팔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공연계는 강력 대응에 나섰다. 가수 아이유는 최근 10주년 콘서트를 앞두고 암표와 전쟁에 나섰다. 정상가보다 높은 가격에 티켓을 판매하려는 시도가 보이면 해당 좌석에 대한 예매를 취소하겠다고 한 것. 부정 티켓 판매자가 팬클럽 회원이라면 영구 제명 처리된다. 아티스트 본인도 팬카페를 통해 ‘콘서트 암표를 잡으러 간다’며 암표 단속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11월 8일 현재도 아이유 콘서트 암표 판매 글은 온라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법조계에서도 암표 판매 금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암표 때문에 피해를 보는 소비자는 없어야 한다는 주장과, 개인 간 자유로운 상거래를 막을 필요가 있느냐는 견해가 맞서고 있는 것. 법조계 관계자는 “단순히 온라인 암표 판매를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암표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개연성이 크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해 불공정하게 티켓을 취득한 경우에는 처벌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이를 입증하기 어렵고, 입증한다 해도 처벌 수위가 벌금 20만 원 정도여서 암표 판매를 막기는 사실상 힘들다. 처벌 범위 외에도 처벌 수위를 올리는 등 다양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63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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