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할 병실이 부족하다고 해서 응급실에서 하루를 버텼는데 알고 봤더니 입원 병실은 텅 비어있었다. 이는 다름 아닌 국내 공공의료의 최전선에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13일 국립중앙의료원에 따르면 의료원 내과는 이달 초부터 병동 비상 운영제인 ‘병동제’를 시범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병동제’를 통해 내과는 90개 병상이 있는 6층 병동에만 환자를 입원시키고 있다. 다른 병동에 병실이 남아 있더라도 내과 환자는 6층 병동에만 입원시키는 것이다.
병원 내과는 최근 환자를 입원시킬 때 6층 병동에 병실 자리가 날 때까지 대기하거나, 불가피한 경우 다른 병원으로 보내는 조치를 해달라고 원무팀 등에 협조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제도를 시행한 주된 이유는 의사 인력 부족 때문이라는 게 병원 측 설명이다. 내과 전공의 14명 중 5명이 전문의 시험 준비 등으로 일시적 공백이 생겨 당분간 9명 체제로 운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병원에는 호흡기, 순환기, 감염, 내분비, 소화기, 신장 등 내과 전문의가 28명에 달한다. 레지던트와 의학교수 사이에 중간과정을 밟는 전문의를 뜻하는 펠로우 3명을 합치면 31명으로 늘어난다.
내과 전문의가 31명에 달하지만 전공의 5명 공백을 이유로 이 같은 제도를 시행하는 게 적절하냐는 지적이 병원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즉 내과에선 의사 한명 당 입원 환자 2.25명만 담당하는 셈이다. 민간병원에서 통상 의사 한명이 20~30명을 담당하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일은 하지 않고 월급만 받겠다는 일부 의사들과 간호사들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며 “공공병원의 긍정적인 역할이 분명히 있지만 이면에서 나타나는 부정적인 한 단면”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 병원에는 환자를 한달에 10명도 진료하지 않는 의사들도 여러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공공의료원이 수익 대비 인건비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간다. 실제 이 병원에는 응급실에 실려왔다가 입원 병실이 없다는 이유로 응급실에서 20시간 넘게 대기하다 다른 환자가 퇴원해서야 입원을 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환자는 24시간 불이 환하게 켜져있고 시끄러운 응급실에서 대기하느라 상당한 고통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환자가 응급실에서 입원 대기하는 동안 4층과 5층 병동에는 병실이 텅텅 비어있었다.
국립중앙의료원 이종복 진료부원장은 “내과 자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는 차원에서 병동제를 시범적으로 운영 하는 것이고 병원이 공식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병동제는 전문성을 높이고 의료진 동선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진료과 별 형평성 문제나 병원 전체 회전율 측면의 단점도 있기에 현재 장단점을 검토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이 진료부원장은 또 “의사 한명이 3병상 정도 보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다는 데는 동의한다”면서도 “다만 대학병원은 펠로우 숫자가 훨씬 많아 단순히 의사 숫자만 가지고 비교하는 것은 무리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해명과는 달리 국립중앙의료원 내과는 지난해에도 전공의 인력 부족을 이유로 병동제를 시범 시행한 바 있다. 당시에도 병원 내 다른 병동이 남아 있어도 환자를 전원 조치하거나 입원 대기하는 일이 빈번하게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내부 갈등에 따른 진료과 간 일 떠넘기기에 원인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병원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각 과별로 의료진의 업무강도가 편차 있을 수 있는데 그런 과정에서 갈등이 없지는 않을 것”이라며 “누구나 다 만족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의료계의 다른 관계자는 “민간병원에 비해 월급은 적게 받아도 일은 적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공공의료원에 가는 사람들이 태반”이라며 “그런데 환자 많이 보라고 하면 힘드니까 병동제를 실시해 결국 환자에게 피해를 전가 시키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진 중심의 경직된 병상 운영 방식이 아닌 환자 중심의 의료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의료진 갈등으로 인해 병실은 비어있는데 입원을 시키지 않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결국 피해는 환자에게 돌아가고 있어 의료체계를 환자 중심으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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