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경기 김포시 하성면의 ‘야생조류 AI 조기감시망’에서 국립환경과학원 소속 연구진들이 감시망에 있는 오리로부터 조류인플루엔자(AI) 검사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김포=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여기 사는 오리들이 조류인플루엔자(AI)로부터 한반도를 지키는 파수꾼입니다.”
지난달 23일 경기 김포시 하성면의 한강 하구 철책선 인근.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이 오리들이 머무르는 약 48m²의 철골 구조물로 들어갔다. 사람을 피해 도망가다 붙잡히는 오리들은 “꽥꽥”거리며 울었다. 한 마리씩 차례대로 부리와 항문에서 시료를 확보하는 작업이 30분가량 이어졌다. 이날 작업에 참여한 한 연구관은 “매주 한 번 이상 시료를 채취해 검사한다”고 말했다.
철골 구조물은 환경부 산하의 국립환경과학원에서 설치한 ‘야생조류 AI 조기감시망’ 시설이다. 몽골이나 시베리아에서 날아오는 철새들로부터 AI가 유입되는지 감시한다. 김포 하성면은 쇠기러기나 재두루미 등 겨울철새가 한반도로 넘어올 때 가장 먼저 쉬어가는 곳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국내에서는 처음 이곳에 AI 조기감시망이 설치됐다.
감시망 안에는 집오리 9마리, 청둥오리 3마리, 거위 3마리 등 총 15마리가 살고 있다. 감시망은 물웅덩이 안에 설치돼 있는데 주변에 볍씨 등 먹이를 놓아두면 이곳을 지나는 철새들이 먹이를 먹으러 모여든다. 이때 감시망 오리들과 철새들이 직간접으로 접촉하게 된다. 만약 철새들이 AI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다면 감시망 오리에게 전파된다.
오리에서 채취한 시료는 환경과학원 실험실로 옮겨져 닭의 종란(씨알)에 주입된다. 이 종란은 5일 동안 부화기 안에서 배양되는데 만약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있을 경우 1, 2일 만에 폐사된다. 감시망 오리들이 마치 ‘미끼’가 되어 AI 감시에 이용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환경과학원 측은 “오리류는 닭에 비해 AI에 내성이 강해 AI에 걸려도 증상이 별로 나타나지 않고 잘 죽지 않는다”고 말했다.
AI 조기감시망 이외에도 철새들이 남기고 간 분변을 수거해 검사하거나 철새를 직접 포획해 시료를 채취하기도 한다. 철새들이 한반도를 많이 찾는 시기를 중심으로 지난해 7월부터 올해 4월까지 분변 2만7750점, 포획 철새 4489점 등을 검사했다. 정원화 생물안전연구팀장은 “직접 날아다니는 새를 잡으려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AI 감시망은 안정적으로 시료를 채취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환경과학원은 지난달 김포 이외에 충남 아산시 삽교호 인근에 조기감시망을 한 곳 더 늘렸다. 하지만 인근 양계 농가에서 ‘감시망 탓에 인근 지역에 AI가 확산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해 다른 곳으로 옮길 예정이다.
철새들이 국경을 넘나들며 이동하는 만큼 국제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8월 환경과학원 연구진들은 우리나라로 날아오는 겨울 철새들이 여름에 주로 서식하는 몽골과 러시아를 직접 찾아가 야생조류 AI 유무를 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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