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경계열→CEO→부도→치킨집. 인문계열→백수 또는 작가→아사(餓死) 또는 치킨집. 공학계열→과로→과로사 또는 치킨집. 한때 인터넷에 떠돌던 ‘한국 학생들의 진로’라는 내용이다. 어떤 진로를 선택하든 망하거나 굶어죽거나 과로사하지 않으면 치킨집 창업으로 귀결된다는 세태 풍자다. ‘웃픈’ 현실이다.
▷가진 돈 많지 않고 기술도 딱히 없는 중장년 퇴직자들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지금은 편의점이라도 있지만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가맹점을 차린다고 하면 거의 치킨집이었다. 프랜차이즈 치킨의 효시는 1977년 ‘림스 치킨’. 4년 뒤 ‘페리카나 치킨’이 양념 치킨을 선보이면서 치킨집 창업은 들불처럼 번졌다. 배달 치킨 주문의 정석이 ‘반 반 무 많이’가 된 것도 이 즈음부터. 요즘은 브랜드마다 하루가 다르게 경쟁적으로 새로운 메뉴를 내놓고 있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 된 프랜차이즈 치킨 브랜드는 약 450개, 가맹점은 2만5000여 곳이다. 개인이 하는 동네가게까지 합하면 전국의 치킨집은 4만 개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치킨집을 포함한 우리나라 외식업의 평균 수명은 3.1년에 불과하다. 도·소매업(5.2년), 수리 및 기타 개인서비스업(5.1년)에 비해 현저히 짧다. 2016년 한해 프랜차이즈 치킨집 3980개가 문을 연 반면 2800개는 문을 닫았다. 대출금리가 0.1% 포인트 인상되면 자영업자 폐업률이 10.6% 오른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요즘 치킨집 사장님들의 얼굴이 밝을 리 없다. 가뜩이나 최저임금, 임대료 인상 등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들이다.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 단지 주변 반경 500㎡이내에는 무려 24개의 치킨집이 들어서 있다고 한다. 그곳 주민들이 특별히 치킨을 좋아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비슷한 규모 아파트단지 주변 치킨집이 평균 6.4곳인 걸 감안하면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해 보인다. 흔히 상대가 백기를 들 때까지 출혈을 감수하고 벌이는 싸움을 ‘치킨 게임’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치킨집 사이에서 치킨 게임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하기야 어디 그곳뿐이겠나. 새 정부 출범 1년 반이 지나도록 경기 전망은 여전히 어둡고 일자리는 줄고 있다. 소비자들까지 지갑을 닫는 현실에서 치킨 게임에 내몰리는 자영업자들의 비명소리가 커질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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