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임종헌(59·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핵심 범죄로 꼽히는 일제 강제징용 소송 재판 개입은 양승태(70·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의 주도 하에 이뤄진 정황을 검찰이 포착했다.
검찰은 지난 14일 임 전 차장을 구속기소 하면서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 개입 등 범행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직접 조사는 이르면 올해 말 강도 높게 이뤄질 전망이다.
16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양 전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징용 재판 개입의 설계자이면서 최종 책임자라고 보고, 수사를 전개해나가고 있다.
검찰은 이미 임 전 차장 공소장에서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 개입 사실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임 전 차장은 지난 2016년 9월 조태열 전 외교부 2차관과 만나 강제징용 재판과 관련한 외교부 의견서 논의를 했는데, 이에 앞서 양 전 대법원장이 임 전 차장에게 재판 진행 과정 등 계획을 구체적으로 전달했다는 것이다.
당시 양 전 대법원장은 보고를 위해 찾아온 임 전 차장과 이민걸 전 기획조정실장에게 ‘대법원장 임기 내에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겠지만, 강제징용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당시 양 전 대법원장이 전원합의체 회부 안건을 결정하는 소위원회(전합소위) 위원장이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전합 회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고, 전합 회부 뒤에는 재판장이 될 양 전 대법원장 입에서 이 같은 벌언이 나왔다는 것은 재판 개입을 입증할 중요 단서라는 것이다.
검찰은 앞서 외교부 압수수색을 통해서 확보한 문건에서 이 같은 경위가 좀 더 구체적으로 담긴 문건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를 뒷받침하는 다수의 진술 증거도 확보한 상태다.
즉 재판을 맡을 법관이자 사법부 수장이 사전에 이미 심증을 정해놓고, 그 과정을 외부에 알림으로써 정부로부터의 편의 등 이익을 도모하려 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이런 정황을 종합해 볼때 강제징용 재판 개입 범행의 주범은 사실상 양 전 대법원장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전합 회부 등 구체적인 계획을 설정하고, 이를 외교부에 전달케 하는 등 일련의 사실 관계를 종합해 볼때 강제 징용 재판 개입은 사실상 양 전 대법원장 직접 지시로 이뤄졌다고 의심하고 있다. 임 전 차장이 과연 대법원장의 지시 없이 이 같은 내용을 외부에 알릴 수 있었겠냐는 취지다.
검찰은 이를 위해 임 전 차장 구속 이후에도 수사를 벌여왔지만 임 전 차장은 개략적인 사실관계만을 인정하고, 범행 의도나 범죄 구성 요건에 대해서는 극구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검찰은 임 전 차장의 상사이자 최고위급 법관이었던 당시 법원행정처 처장을 소환해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이미 앞서 지난 7일 차한성(64·7기) 전 대법관이 비공개 소환 조사를 받았고, 오는 19일에는 박병대(61·12기) 전 대법관이 공개 소환될 예정이다.
이들 모두는 법원행정처 처장 재직 시절 일제 강제징용 소송 재판 개입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이들에 대한 조사 내용을 토대로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조사 준비에 주력할 계획이다.
법조계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소환 조사가 적어도 올해 말에는 이뤄질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특히 사법 농단 의혹의 최고책임자인 만큼 강도 높은 조사는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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