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직장인 최모씨(27·여)는 최근 7명의 목숨을 앗아간 ‘종로 고시원 화재’ 소식을 접한 뒤 막연한 불안을 느끼게 됐다. 젖은 천으로 입을 가린 뒤 자세를 낮추고 대피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최씨가 아는 대피 요령의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별다른 소방훈련을 받아 본 적도 없다.
최씨는 “소방훈련을 받아 본 적이 없다는 데 대해 별 생각이 없었는데 7명이나 죽었다고 하니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며 “정말로 불이 났을 때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공공기관에 다니고 있는 홍모씨(28·여)는 입사 이후 주기적으로 화재 대피 훈련을 받고 있다. 홍씨는 “물론 교육을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모두 귀담아듣는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성실하게 교육을 받으려 한다”며 “임직원들이 모두 모여서 완강기 사용 요령을 알려주는 영상을 시청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 및 공공기관 등과는 달리 중소기업에서는 비상상황 발생시 대피 요령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를 강제할 수단도 여의치 않아 소방훈련을 받고 싶다면 직접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재난 대비 훈련에 대한 수요는 결코 적지 않다. 2016년 7월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발표한 ‘국가적 재해 재난 대응 관련 국민 인식 현황’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을 대상으로 한 상시적 재난대응 교육 실시에 대해 응답자의 91.7%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재난대응 교육 프로그램이 제공될 경우 수강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자도 83.9%에 이르렀다. 또 정부나 공공기관이 제공해야 할 재난대응 교육 프로그램 중 가장 필요한 것으로는 응답자의 38.6%가 ‘재난 종류별 대응 요령 프로그램’을 꼽았다.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 출입자를 대상으로 소방훈련을 실시하도록 하는 규정이 없지는 않다. 현행 ‘화재예방·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소방법)’에 따르면 11인 이상이 상시 근무하거나 거주하는 건물에서는 연 1회 이상 건물에 출입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소방훈련과 소방안전관리교육 등을 실시해야 한다.
그러나 소방 훈련 및 방화 관리 교육을 실시하지 않았을 때 물어야 하는 과태료는 최고액이 3차 위반시의 200만원 수준이다. 1차 위반은 50만원, 2차 위반은 100만원으로 역시 미미하다.
결국 의무적으로 소방서와 합동 대피 훈련을 하도록 법적으로 정해진 공공기관이나, 보는 눈이 많아 상대적으로 소방안전교육과 근로자 법정의무교육을 철저하게 실시할 수밖에 없는 대기업을 제외한다면, 업무상 불편을 감수하고 훈련을 실시할 유인이 크지 않은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소방훈련을 받고 싶은 일반인은 직접 관련 기관의 문을 두드리는 수밖에 없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내가 소속된 기관에서 안전교육을 받지 않는다면 한국소방안전원을 통해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며 “안전체험관을 방문해 (대피요령 등을) 숙지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소방훈련의 필요성 이전에 건물 설계시 안전 기준을 철저히 지키도록 해야 한다는 당부도 덧붙였다. 이 교수는 “두 방향 피난이 구사되지 않는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건물 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철제 계단이 거의 없다”며 “근본적으로 (건물을) 지을 때부터 안전하면 인명피해가 일어날 일이 없다”고 꼬집었다.
직장인 홍씨 역시 “완강기 쓰는 법에 대해 교육을 받았고 대피 훈련도 받고 있지만 결국 사고가 나면 우왕좌왕할 것”이라며 “한 건물에 사람이 몇천 명인데 비상계단은 너무 좁다. 고층에 있는 사람들은 더 위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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