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할 1명 뽑아 음료수만… 놀이 같은 ‘술자리 보프’ 효과만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9일 03시 00분


[생명운전 차보다 사람이 먼저다]<19>네덜란드-독일, 음주운전과 전쟁

음주운전 근절을 위해 독일에서 시행 중인 ‘보프(BOB)’ 캠페인. 시민이 동행자에게 술을 마실 건지, 운전을 할 건지 두 가지 중 하나를 정할 것을 묻고 있다. 네덜란드와 독일에서는 음식점, 바, 클럽처럼 술을 파는 업소에서 일행 중 1명을 술을 마시지 않는 ‘보프’로 지정해 음주운전을 줄이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독일도로안전협회(DVW) 제공
음주운전 근절을 위해 독일에서 시행 중인 ‘보프(BOB)’ 캠페인. 시민이 동행자에게 술을 마실 건지, 운전을 할 건지 두 가지 중 하나를 정할 것을 묻고 있다. 네덜란드와 독일에서는 음식점, 바, 클럽처럼 술을 파는 업소에서 일행 중 1명을 술을 마시지 않는 ‘보프’로 지정해 음주운전을 줄이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독일도로안전협회(DVW) 제공
“단순히 음주운전을 하지 말라고 ‘지시’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들이 음주운전을 하지 않는 습관이 들도록 재미있는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홍보하는 게 보다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네덜란드 아메르스포르트 네덜란드교통안전협회(VVN)에서 만난 로프 솜포르스트 마케팅·교육 담당자가 강조한 말이다. VVN은 음주운전을 줄이기 위해 ‘보프는 술에 취하지 않는다(BOB STAYS SOBER)’ 캠페인을 2001년부터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보프(Bob)는 한국의 ‘철수’ ‘영희’처럼 네덜란드에서 흔한 이름이다.

○ 놀이가 된 근절 캠페인 ‘보프의 기적’

네덜란드 사람들은 술자리가 시작되기 전 일행 가운데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 ‘보프’를 정한다. 보프는 보프라 적힌 열쇠고리를 건네받고 술자리가 끝난 뒤 운전을 책임진다. 술자리를 가지는 사람들이 재미나게 동참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음주운전을 줄여 보자는 취지였다. 보프 캠페인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성공적인 교통안전 캠페인으로 자리를 잡았다. 네덜란드 운전자의 75%가 차량을 이용해 술이 있는 식사 자리에 가면 캠페인에 참여한다. 네덜란드에서는 보프로 지정된 사람은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네덜란드에서는 주말 밤을 기준으로 전체 운전자 중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사람이 2002년에는 4%였지만 지난해 1.4%로 줄었다. 솜포르스트 씨는 “캠페인이 시작되고 2년 만에 주말 밤 젊은층이 술 마시는 비율이 40%나 줄었다”고 말했다.

특히 주류회사가 함께 캠페인에 참여해 큰 화제가 됐다. VVN이 주류회사의 참여를 제안했을 초기에는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VVN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설득했고, 주류회사들이 올해부터 2020년까지 3년간 보프 캠페인을 후원하기로 약속했다.

술을 즐기며 진행되는 각종 유명 공연 및 축제에서도 보프 캠페인은 큰 효과를 거뒀다. 공연과 축제 참가자들 가운데 보프가 되기로 한 사람에게는 보프라고 적힌 도장을 손목에 찍게 한다. 보프가 된 사람은 행사가 끝난 뒤 직접 ‘보프 캠페인 부스’에 가서 음주 측정을 한다. 이들이 음주를 하지 않았다면 선물을 받을 수 있다. 김상옥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큰 사회적 문제가 된 국내에서 음주운전을 줄이는 데 보프 캠페인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 강력한 처벌과 계도로 음주운전 잡은 독일

독일은 세계적인 자동차 산업 강국답게 정부와 산업계, 시민사회가 음주운전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8일 독일 베를린에서 만난 독일도로안전협회(DVW)의 쿠르트 보데비히 회장은 “1970년대 서독에서만 교통사고로 한 해 약 2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통일 독일에서 3180명이 줄었다”며 “안전띠 의무화와 함께 음주운전자에 대한 처벌 강화가 큰 비결이었다”고 소개했다.

DVW는 1924년 설립된 유럽 최대의 교통안전 비영리기구(NPO)로 독일 전국에서 6만 명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며 교통안전 정책을 개발·제언하고 캠페인을 벌인다. 자동차 제조사가 금전적 지원을 하고, 정부가 정책적으로 뒷받침한다.

독일의 음주운전 적발 기준은 한국과 같은 혈중알코올농도 0.05%다. 하지만 운전자가 음주운전의 위험을 일찍이 깨치도록 하는 데 음주운전 근절 정책의 중점을 뒀다. 대표적인 것이 면허를 갓 취득한 후 2년간의 ‘임시면허’ 소지자에 대한 조치다. 이들의 음주운전 적발 기준은 혈중알코올농도 0.03%다. 임시면허 운전자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되면 정부는 면허를 3∼6개월간 회수한다. 만 18∼21세 임시면허 운전자의 경우에는 임시면허 기간이 4년으로 늘어난다. 이 나이에는 임시면허가 아니라도 혈중알코올농도 0.03%를 음주운전 적발 기준으로 한다. 술 한 잔만 마셔도 절대 운전대를 잡으면 안 된다는 경고인 것이다. 지난해 독일의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231명이었다. 2014년 260명과 비교해 11.1% 줄었다. DVW는 이를 모든 연령대로 확대할 것을 정부와 검토하고 있다.

음주 문화가 일찍이 발달한 ‘맥주의 나라’답게 음주운전을 근절하는 다양한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네덜란드처럼 독일에서도 보프 캠페인은 흔한 풍경이다. 주류를 판매하는 식당에서는 고객이 자신의 운전면허증을 제시하면 무료로 음료를 자발적으로 제공한다. 보데비히 회장은 “술과 운전을 처음 접하는 어린 운전자가 음주운전의 위험성을 일찍이 알고 단념하도록 하는 데 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박수정 한국교통안전공단 선임연구원은 “우리도 독일 등 유럽처럼 강력한 처벌로 음주운전 시도를 초기에 막고, 음주를 했을 경우 차량의 시동이 걸리지 않는 ‘시동잠금장치’ 보급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아메르스포르트=구특교 kootg@donga.com / 베를린=서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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