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숨지거나 다치게 한 사람 10명 가운데 9명 이상이 집행유예 선고를 받는 등 엄격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주운전을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 속에 사법부 내에서도 국민의 법 감정을 반영해 양형기준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 법원 “음주운전 기준 세분화 필요”
대법원 양형위원회와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1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음주와 양형 공동학술대회’를 열고 음주운전을 비롯한 주취자의 범죄와 양형기준에 대해 토론했다. 참가자들은 음주운전에 대한 사법부의 양형기준이 국민의 법 감정과 거리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했다. 양형기준에는 음주운전 사망 사고(위험운전치사) 혐의의 피고인에게 최대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하도록 돼 있다.
법원을 대표해서 나온 최형표 대법원 재판연구관(부장판사)은 “현재 도로교통법의 음주운전 기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05%를 세부적으로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초보 운전자, 10대 운전자, 대중교통 차량 운전자 등에게는 보다 강화된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단순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경우에는 벌금형에 그친다. 최 판사는 “상습 음주운전자 등의 문제를 봤을 때 단순 음주적발에 대한 양형기준 검토가 필요하다”며 “상습 음주운전, 집행유예 처벌 기간 중의 음주운전 등 심각한 음주운전에 대해서는 벌금형 또는 징역형 부과에 대한 객관적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음주운전 사고로 사람을 숨지거나 다치게 하면 2007년 제정된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의 위험운전치사상 혐의가 적용된다. 하지만 최 판사가 2015∼2017년 이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의 최종 판결결과 7352건을 분석한 결과 실형은 9.5%에 그쳤다. 치상은 91.6%, 치사는 53.7%가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이들의 평균 형량은 징역 8.6개월에 그쳤고, 치사의 경우에도 18.4개월뿐이었다. 최 판사는 “양형기준이 모든 사건에 일률적으로 적용돼야 하는 건 아니다. 사안에 따라 양형기준을 이탈해 판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검찰 “구형량 높였지만 판결에 반영 안 돼”
검찰 측의 허수진 서울남부지검 검사는 “고의범인 음주운전과 결합된 사고까지 지나치게 가벼운 형이 선고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윤창호 법’에서 위험운전치사를 살인죄와 동등하게 처벌하도록 한 것도 음주운전을 과실로 처리하는 것에 대해 국민과 사법부 간 법 감정의 괴리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2016년 4월부터 음주운전 구형량을 높이고 있지만, 선고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허 검사는 밝혔다.
혈중알코올농도 0.1% 이상의 심각한 음주운전(위험운전)을 단순 음주운전 사고와 동일시하는 현행 양형 체계를 고칠 것도 제안했다. 허 검사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교특법)과 특가법이 음주운전에 대해 규정하고 있지만 양형 기준은 특가법의 위험운전 행위를 구체적으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음주운전 중 건물을 들이받는 것이나 음주운전 치사상의 양형 기준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허 검사는 “음주운전 치사상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제정된 특가법 조항이 사문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별도의 양형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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