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는 고영한(63·사법연수원 11기) 전 대법관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14시간만에 귀가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23일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11시35분까지 고 전 대법관을 상대로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 피의자 조사를 했다.
고 전 대법관은 조사를 마치고 나온 뒤 ‘국민께 사과한다고 했는데 인정할 건 인정했나’라고 묻는 취재진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은 채 검찰 청사를 떠났다.
고 전 대법관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일부 사실관계를 인정하면서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취지의 답변을 하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그는 이날 오전 9시10분께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법원행정처의 행위로 인해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서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법부가 하루빨리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고 전 대법관은 양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인 2016년 2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법원행정처 처장을 지냈다. 검찰은 그가 법조비리 무마 의혹 및 재판 개입 등 상당수 의혹에 관여한 것으로 보고 강도 높은 추궁을 이어가고 있다.
고 전 대법관은 지난 2016년 ‘부산 스폰서 판사’ 비위 의혹을 무마하기 위해 사건을 은폐하고 재판에 개입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당시 문모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자신의 스폰서인 건설업자 정모씨의 재판 관련 정보를 유출했고, 이를 확인한 법원행정처가 감사나 징계 없이 사건을 무마했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이 과정에서 고 전 대법관은 당시 윤인태 부산고법원장에게 직접 연락해 관련 재판의 변론을 재개하고 선고기일을 미루도록 요청했고, 윤 원장은 이를 담당 재판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과 관련해 고용노동부의 재항고 이유서를 대필해줬다는 의혹에 연루된 혐의도 받고 있다. 당시 대법원은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 효력을 정지한 하급심 결정을 뒤집고 고용부의 재항고를 받아들였는데, 당시 주심은 고 전 대법관이었다.
이 밖에도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 확인 행정소송 관여 ▲헌법재판소 내부 정보 및 자료 수집 ▲헌재소장 관련 동향 수집 및 비난 기사 대필 ▲국제인권법연구회 및 인사모 압박방안 마련 ▲상고법원 등 사법행정 반대 판사 부당사찰 ▲정운호 게이트 관련 영장 및 수사 정보 수집 등 혐의도 있다.
이로써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전직 대법관 3명 모두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검찰은 지난 7일 차한성 전 대법관을 비공개 조사했고, 지난 19일에는 박병대 전 대법관을 공개 소환했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고 전 대법관 조사 이후에 의혹의 ‘정점’인 양 전 대법원장 수사에 집중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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