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출퇴근하는 직장인 A(36)씨는 평소 출근길에 생지옥을 경험하고 있다. 길음역쯤부터 옴짝달싹할 수 없을 정도로 승객이 들어차서 한성대입구역에서부터는 숨쉬기도 어려울 정도가 된다.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리며 호흡이 가빠지는 공황발작 증세가 왔지만 사방이 사람으로 가득해 도중에 내리지도 못한다. 가까스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 내린 A씨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또 한번 좌절한다. 환승하려는 승객이 승강장에 빽빽이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인파 속에 종종걸음으로 역을 빠져나간 A씨는 근무 시작 전 이미 녹초가 되어 버린다.
서울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시민이 환승역에서 인파에 떠밀리며 고통 받는 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상황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보행친화도시를 표방하며 지하철 등 대중교통 이용을 권장하는 서울시로서는 출퇴근시간 ‘지옥철’ 문제야말로 선결해야 할 과제다.
그간 서울시는 지하철역사 승하차인원에만 주목하며 안전대책을 마련해왔다. 지난해 일일 승차인원 10만553명에 하차인원 10만1239명인 강남역을 비롯해 잠실(승차 8만8820명 하차 8만3130명), 홍대입구(승차 7만8411명 하차 8만3765명), 신림(승차 7만367명 하차 6만8853명), 구로디지털단지(승차 6만2309명 하차 6만2317명) 등이 대표적인 혼잡역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작 시민이 체감하는 혼잡도는 환승역이 훨씬 높다. 지하철 3개 노선이 겹치는 서울시내 3개 역사의 환승인원은 일반역사의 승하차인원 총계를 크게 웃돈다.
25일 서울교통공사 자료에 따르면 2·4·5호선이 겹치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의 평일 하루 평균 환승인원은 28만8321명에 달한다. 비교적 한산하다는 토요일에도 23만10001명(일요일 16만7353명)이 환승한다. 이는 강남역의 평일 평균 승하차인원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은 수준이다.
3·7·9호선이 겹치는 고속터미널역은 평일 평균 20만6890명, 토요일 19만2523명, 일요일 13만3765명이 환승한다. 1·3·5호선이 겹치는 종로3가역은 평일 18만8861명, 토요일 16만5851명, 일요일 10만7761명이 환승한다.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는 이 같은 환승역 혼잡 문제를 이미 파악하고 있다. 공사는 출퇴근 혼잡시간대에는 최소 시격(1~8호선 기준 2.5분~4.5분)을 적용해 열차를 최대한 자주 운행, 승객을 분산시키고 있다. 승객 혼잡도가 높은 승강장에서는 분산승차를 안내하고 있다.
아울러 공사는 역사와 열차 안 화면을 통해 ▲무리하게 열차에 타거나 내리지 않기 ▲열차와 승강장 사이에 발이 빠지지 않도록 살피기 ▲에스컬레이터에서는 걷거나 뛰지 않기 ▲계단에서는 뛰거나 장난치지 않기 등을 권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조치가 지하철 혼잡도를 낮추는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2017년도 지하철 혼잡도 정기조사 결과에 따르면 평일 출퇴근 시간대 혼잡도는 100%를 넘어 170%에 이르고 있다.
2호선 외선 사당→방배(오전 8시30분~9시) 열차에는 최대 2만6842명이 탑승해 혼잡도가 170.3%까지 치솟았다. 4호선 하행 한성대입구→혜화(오전 8시~8시30분) 열차에는 2만5164명이 탑승해 혼잡도 159.7%를 기록했다. 7호선 상행 까치울→온수(오전 8시~8시30분) 열차에 7834명이 타 혼잡도가 155.9%였다.
이처럼 지하철 혼잡도가 높지만 뾰족한 대책은 없다. 지하철 역사를 더 크게 짓거나 열차 내부 공간을 확대하면 되지만 이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발생하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진다.
해법이 고갈된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혼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민 의견을 구하고 있다. 시민 박모씨가 서울교통공사 누리집 ‘시민 아이디어’에 제안한 ‘노선 중복 건설’ 등이 눈길을 끈다.
박씨는 “서울 지하철 2호선처럼 베를린 시내에도 순환노선이 있는데 그 중 유동인구가 많은 주요 목적지는 최대 4개 노선이 동시에 그 역에 설 수 있도록 만들었다”며 “그 결과 베를린 지하철은 혼잡도가 매우 낮다. 단지 인구밀도가 서울보다 낮아서라기보다 지하철 노선이 승객을 분산시키도록 중복해서 잘 만들어져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2호선 구간 중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홍대와 강남의 인구를 분산시키는 예로 합정에서 유동인구가 많은 홍대 방면으로 출발하는 6호선 일부 구간(합정-시청)을 만든다거나(신도림에서 까치산으로 가는 노선을 별도로 만든 것처럼) 사당의 4호선을 강남방향으로(사당-강남 구간)가는 노선을 만든다거나 하면 2호선을 이용하는 승객이 분산되는 효과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이 의견 역시 기존의 환승체계와 크게 차별화되지 않아 또다른 환승지옥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어 보인다.
서울교통공사는 환승역 혼잡을 줄이겠다며 교통카드를 찍지 않아도 지하철에 탈 수 있는 ‘오픈게이트’ 기술을 공동연구하고 있지만 이 역시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향후 수년내 4호선 등 노선이 경기도까지 연장돼 승객이 더 늘어날 전망이라 환승역 혼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획기적인 대안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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