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업체에 개인車 등록후 일 받아… 운전사들 무리한 운행 개선 안돼
안전임금제 도입 등 보완책 시급
나운전 씨(50)는 25t 트럭을 사기로 하고 1억5000만 원에 계약했다. 모아둔 돈으로 선금 3000만 원을 먼저 내고 나머지 금액은 매달 할부로 갚기로 했다. 열심히 일하면 매달 남부럽지 않은 돈을 손에 쥘 거라는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돈이 술술 새나갔다. 먼저 화물 운송을 하려면 영업용 번호판이 있어야 하는데 영업용 번호판은 화물운수사업자에게만 나온다. 나 씨는 ‘프리미엄’ 2000만 원을 주고 운수회사에서 영업용 번호판을 샀다. 운수회사에서는 프리미엄 외에도 매달 차량 관리 명목으로 ‘지입료’를, 일감 소개비용으로 수수료를 떼겠다고 했다.
주변 화물 운전사들은 “운수회사들이 서로 영업용 번호판을 사고팔아 수시로 소속 운수회사가 바뀐다”고 말했다. 운수회사가 일방적으로 계약 만료를 통보하면 일감을 얻지 못해 속수무책으로 빚더미에 앉는다는 흉흉한 이야기도 들렸다. 나 씨는 ‘발을 잘못 들였나’ 하는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지입료와 수수료, 유류비를 벌려면 후회할 시간이 없었다. 매일 화물을 가득 싣고 땅 끝에서 끝까지 여러 차례 운행하는 생활이 시작됐다.
화물운송업계 관계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화물차 운전사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재구성한 사례다. 한국에서 화물차 운전사들의 ‘3과’(과로, 과속, 과적)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지입제’라는 특수한 화물차 운용 제도 탓이 크다는 지적이 있다.
지입제의 사전적 의미는 ‘운수회사에 개인 소유 차량을 등록해 일감을 받아 일한 뒤 보수를 지급받는 제도’다. 이 의미대로라면 화물차 운전사가 개인사업자로서 운수회사와 동등한 지위를 가져야 하지만 현실은 화물차 운전사가 운수회사에 종속돼 있는 철저한 갑을(甲乙)관계다. 화물차 운전사는 운수회사의 을이고, 운수회사는 화주(貨主)에게 을이다. 화물차 운전사, 운수회사, 화주로 이어지는 ‘다단계’ 구조인 것이다. 반면 체코를 비롯한 유럽연합(EU) 국가들은 운송사가 화물차를 소유하고, 운전사들은 회사에 고용된 직원이다. 정해진 시간 동안 일하는 월급제이기 때문에 ‘3과’의 유혹에 빠질 이유가 없다.
한상진 한국교통연구원 국가교통안전연구센터장은 “지입제를 당장 바꾸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화물차 운전사를 위한 ‘안전임금제’를 실시하면서 화물차주에게 적절한 운송료가 배분되고 있는지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디지털운행기록계(DTG)를 의무 제출하도록 하고 과적, 과속, 과로는 화물차주와 운송사에 모두 책임을 묻는 양벌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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