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원대 회삿돈을 가로채고 1000억원대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 등으로 기소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69)의 첫 재판이 23일 열린다.
서울남부지법은 이날 오전 10시20분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심형섭) 심리로 조 회장의 첫 공판준비기일을 연다. 공판준비기일은 검찰 공소요지를 설명하고 혐의별 쟁점을 정리하는 절차로, 피고인에게 출석의무는 없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15일 특경법상 배임·사기·횡령·약사법 위반·국제조세조정법 위반·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조 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조 회장은 그에게 적용된 8개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자백한 혐의는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된 610억원대 해외자산 상속세의 탈세 혐의뿐이다.
이에 따라 이번 재판에서는 조 회장이 차명약국을 통해 요양급여를 타낸 것과 회삿돈 274억원을 빼돌린 혐의가 인정될 지가 핵심쟁점으로 꼽힌다.
약국운영자 류모씨(68) 및 약국장 이모씨(65)와 함께 인하대병원에 대형약국을 차명으로 개설해 1500억원대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특경법상 사기·약사법위반)로 기소된 조 회장은 “개설주체는 내가 아니고 약국 자릿세에 대한 수수료를 받았을 뿐”이라며 주요 책임을 류씨와 이씨에게 돌리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조 회장이 정석기업 대표이사 원모씨(66)를 통해 약사자격을 가진 약국장 이씨와 공모해 차명약국을 개설한 뒤 약국지분 70%를 보유했고, 2014년까지 매년 약 2억8000만원의 배당수익을 현금으로 받았다고 판단했다.
또 약사자격증이 없는 조 회장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한 요양급여를 편취하는 등 1522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겼다고 봤다. 사실상 조 회장이 약국개설과 운영을 주도했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속였다는 판단이다.
반면 274억원에 달하는 ‘회삿돈 배임·횡령’ 혐의를 완전히 떨쳐내기는 쉽지 않아보인다.
검찰은 조 회장이 2003년부터 지난 5월까지 그룹 계열사 삼희무역, 플러스무역, 트리온무역을 순차로 설립하고 물품공급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공급사의 중개업체로 트리온무역을 끼워넣어 수수료 명목으로 196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겼다고 보고 있다.
또 조 회장이 경영권과 무관한 주식에 ‘경영권 프리미엄 30%’를 얹는 수법으로 3남매의 주식을 ‘뻥튀기’했고, 정석기업은 이들의 주식 7만1880주를 176억원에 매입했다고 봤다.
검찰 관계자는 “조 회장 측은 횡령과 배임부분에 대해 대체로 사실관계는 인정하지만 책임 범위나 내용을 놓고 다투고 있다”고 전했다. 돈을 챙긴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를 함께 기소된 실무자들 책임으로 돌리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아울러 검찰은 조 회장이 ‘땅콩회항’ 사건으로 형사재판에 넘겨진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44)의 변호사 선임료 17억원을 대한항공이 대납하도록 했고, 모친 고(故) 김정일 여사와 묘지기, 모친의 집사 등 3명을 정석기업 임직원으로 올리고 급여를 타내는 수법으로 20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타냈다고 결론 내렸다.
이밖에도 조 회장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지정 당시 부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65)의 동생이 소유한 4개 회사 등 10개 한진그룹 계열사를 명단에서 지우고 친족 114명을 고의로 누락한 혐의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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