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아현지사 화재로 ‘유선망’의 안전 중요성이 급부상한 가운데 확실한 재발 방지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단 하나가 아닌 복합적인 대책이 필요해 정부와 이동통신사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26일 경찰에 따르면 1차 합동감식 결과 KT 아현지사 지하 1층 통신구의 약 79m가 화재로 소실됐다. 이곳 통신구의 길이가 총 150m인 점을 고려하면 절반 이상이 불에 탄 것이다.
아현지사 통신구는 가로-세로 각 2m 크기로 150m 길이다. 지하1층에는 통신구 외에는 다른 시설이 없다. 사람 1명이 겨우 드나들 수 있는 구조다. 이곳에서 불이나자 사물인터넷(IoT) 센서가 감지해 곧바로 신고에 들어갔지만 케이블을 감싸는 피복 등이 타면서 생긴 유독가스로 현장 진입이 어려워지면서 진화가 더뎠다.
그러나 이 지하 통신구에는 스프링클러 시설이 없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아현지사 지하 1층에는 소화기 1대만 비치돼 있었다. 현행법상 이 지하 통신구처럼 협소한 구역은 스프링클러나 소화기, 화재경보기 등 ‘연소방지설비’ 의무 설치구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행 소방법에는 Δ지하구의 길이가 500m 이상이고 Δ수도·전기·가스 등이 집중된 ‘공동 지하구’ 일 때만 스프링클러·화재경보기·소화기 등 연소방지시설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통신구가 있는 지하 시설은 화재 감지도 어렵고 사람이 진화도 어렵다”며 “특히 통신이 마비되면 국민적인 혼란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지하구의 길이와 상관없이 이산화탄소 소화설비나 분말 소화설비, 청정소화약제 소화설비 등 화재진압설비를 설치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발방지를 위해 ‘설비공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화재를 예로 들면 SK브로드밴드나 LG유플러스 망으로 KT 사용자들을 우회할 수 있도록 해서 통신불능 상태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4일~25일 연속 아현지사를 찾은 황창규 KT 회장과 오성목 KT 네트워크부문장(사장)도 ‘설비 공용’ 문제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황 회장은 “이번 기회로 설비 공유 등 문제가 제기돼 더욱 긴밀하게 협조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오 사장 역시 “이번처럼 망에 장애가 발생했을 때 타사 망을 사용할 수 있도록 다른 사업자와 정부와 협의중”이라고 했다.
관건은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가 설비 투자에 나설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유는 관로 등 필수설비의 90% 이상이 KT 자산이기 때문. 이번과 같이 KT 망에 장애가 발생했을 때 타사 망을 사용하려고 해도 망구축이 부족해 우회 자체가 안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D등급 국사에는 ‘백업’(비상 가동조치) 시설을 갖추지 않게 한 것도 개선해야 할 사항으로 보인다. 오 사장은 “아현지사는 D등급으로 백업 체계가 구축돼 있지 않다”며 “백업은 많은 투자를 수반하기에 구축하지 못했지만 중요한 국사는 백업 체계가 갖춰져 있다”라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화재로 유선망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정부와 이동통신3사가 모두 알게 됐을 것”이라며 “소방법을 개정하고 유선망 투자에 사업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가 관심을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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