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9시 반 전남 여수공항. 늦가을 정취를 만끽하기 위해 새벽 비행기를 타고 여수를 찾은 관광객들이 하나 둘 공항 청사로 들어섰다. 그들을 제일 먼저 맞이하는 여수공항 관광안내소의 신은경 관광안내사도 덩달아 분주했다. “여수의 핵심콘텐츠는 누가 뭐래도 ‘여수 밤바다’예요. 음식과 다양한 즐길 거리에 낭만적인 야경까지 더해져 젊은 층이 많이 찾아오죠.”
여수의 진면모는 실제 어둠이 깔리고 불빛이 밤바다를 수놓기 시작한 때부터 드러났다. 돌산대교, 소호동동 다리, 해양공원 밤빛누리 등에 조명이 켜지자 아름다운 야경이 밤바다 위로 떠올랐다. 돌산공원 ‘놀아 정류장’에는 해상 케이블카를 타려는 이들의 행렬이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종화동 종포해양공원의 바닷가를 따라 조성된 낭만포차 거리에는 해물삼합과 ‘여수 밤바다 한정판 잎새주’를 맛보려는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26일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진행한 전국 159개시군(특별시와 광역시 구 제외) 대상 지역경쟁력지수 평가에 따르면 여수처럼 차별화된 콘텐츠를 가진 지방자치단체들이 가파른 순위상승을 이뤄냈다. 충북 청주시와 경북 울주군이 유사한 사례다. 경기 화성시가 직전 평가였던 2016년에 이어 1위를 지킨 가운데 경기 성남시와 경북 구미가 2, 3위로 뒤를 이었다.
● ‘밤바다’ 콘텐츠가 여수 전체를 살렸다
여수는 ‘한번 쯤 찾고 싶은 낭만적인 밤바다’의 도시로 완전히 새로 태어났다. 오동도, 돌산공원, 해상케이블카 등 해양 관광 자원에 밴드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란 노래가 입혀지면서 20, 30대를 감성적으로 자극한 덕분이다.
여수의 오랜 관광지 오동도에서마저 중장년 단체 관광객 사이사이로 셀카봉을 든 20대 청춘남녀들을 다수 만날 수 있었다. 대학생 김모 씨(20)는 “PC방에서 친구들과 게임을 하다 갑자기 ‘여수 밤바다 보러 갈까’라고 의기투합해 2시간만 자고 출발했다”고 말했다.
여수시는 2016년 5월 낭만포차 거리를 조성했고, 2017년부터는 2층 버스를 타고 버스킹을 즐기며 관광지를 둘러보는 ‘낭만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런 아기자기한 즐길 거리를 끊임없이 개발해야 관광객들이 두 번, 세 번 재방문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서채훈 여수시 관광과 관광진흥팀장은 “‘여수 밤바다’라는 노래를 듣고 찾아온 2030 세대들에게 그들이 기대하는 감성적인 콘텐츠를 제공하려 했다. 그래야 한번 스쳐지나가는 여행지가 아니라 다시 찾고 싶은 여행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인구 28만 명의 중소도시 여수를 찾은 관광객은 2014년 988만 명에서 2017년 1508만 명으로 50% 이상 늘어났다. 여수 전체 경제도 활력이 돌고 있다. 택시기사 이모 씨(53)는 “6~7층짜리 대형 펜션이 지금도 곳곳에 지어지고 있지만 주말이면 관광객들이 넘쳐 숙박업소가 모자란다”며 “여수 경기가 전반적으로 좋아졌다”고 들뜬 목소리로 자랑했다.
여수 내 관광시설, 숙박업, 외식업 등 관광연관 산업체는 2015년 9월 6662개소에서 2018년 6월 7130개소로 7.0% 늘었다. 관련 종사자수는 같은 기간 1만3346명에서 1만6619명으로 24.5%나 증가했다. 콘텐츠가 지역 경제를 살리고, 이것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 2009년과 비교해보니 전남 약진 두드러져, 순위 상승 가장 큰 곳은 제주시
사람들의 뇌리에 ‘특별함’으로 각인되지 못했던 청주도 최근 문화예술의 거점으로 새롭게 거듭나고 있다. 옛 담배공장과 창고 건물을 문화예술 향유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면서부터다.
1946년 문을 연 청주 옛 연초제조창은 한 때 직원 2000여명이 연간 100억 개비의 담배를 생산했던 곳이다. 하지만 2004년 공장이 폐쇄된 후 삭막한 모습으로 방치됐다. 당초 이곳에 아파트를 지으려던 청주시는 “보존가치가 있다”는 지역 예술인들의 건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폐산업시설 문화재생 사업’ 대상으로 선정된 후 본격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연초제조창 일대는 문화예술인들의 활동거점이 되면서 지역주민들은 물론 외부인 발길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올해 지역경쟁력 지수 28위에 오른 울주군도 매년 9월 신불산에서 세계산악영화제와 산상음악축제인 ‘오디세이’를 개최하고 있다. ‘영남 알프스’라는 아는 사람만 알던 브랜드를 전국적으로 알리기 위한 이벤트들이다. 심재헌 농경연 연구위원은 “작은 탄광마을이었던 독일 동부의 자이펜이라는 도시는 목공예 산업을 특화시켜 지금은 연간 1400억 원 규모의 목공예품을 생산하고 있다. 50만 명의 관광객 유치는 덤으로 따라왔다”고 했다. 그 도시만의 특별한 콘셉트와 스토리가 곧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동아일보와 농경연의 지역경쟁력지수 평가는 2009년 시작돼, 2010년부터는 2년에 한 번씩 진행되고 있다. 첫 조사와 비교해 올해 10계단 이상 순위가 상승한 시·군은 총 56개로 집계됐다. 광역자치단체별로는 전남(11개), 전북(9개), 충남(7개), 경북(7개) 등의 순이었다. 제주시의 경우 2009년과 비교해 무려 92위나 순위를 끌어올려 ‘글로벌 관광지’로 업그레이드된 제주의 변화상을 실감하게 했다.
지역경쟁력지수는 각 지역이 차별화된 발전 전략을 모색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개발된 지수다. 농경연이 자체 개발한 지역발전지표를 기초로 하면서 △생활 서비스 △주민 활력 △지역 경제력 △삶의 여유 공간 등 4개 부문 총 20개 세부 지표로 구성돼 있다.
▼ 작지만 강한 지자체 ▼
동아일보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년마다 평가하는 지역경쟁력지수(RDI)에서 꾸준히 50위권 내 이름을 올리고 있는 ‘작지만 강한 군(郡)’들이 있다. 부산 기장군, 대구 달성군, 울산 울주군, 충북 진천군과 음성군, 전남 화순군, 경북 칠곡군 등이다. 이들 7개 지역은 인구 수 15만 명 미만이지만 수년째 지역경쟁력지수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특히 기장군과 달성군, 울주군은 ‘톱20’에 이름을 올리며 인구가 훨씬 많은 도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들의 약진은 이른바 ‘도시 연담화(連擔化)’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도시 연담화는 대도시가 주변으로 팽창하면서 주변 중소도시와 달라붙어 거대도시가 형성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에 따라 과거 경남 기장군과 울주군, 경북 달성군이 각각 대도시에 편입돼 부산 기장군, 울산 울주군, 대구 달성군으로 바뀌었다. 대도시의 도심이 커지면서 이들 주변 군과의 거리도 좁혀졌고, 자연스럽게 도시민들의 베드타운(Bed town)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인구, 특히 생산가능인구가 빠르게 늘어나 지역발전지수가 크게 오른 케이스다.
진천군과 음성군은 충북 지역에서도 경기에 가장 인접한 지역이다. 때문에 산업입지 인구 유입 등의 수혜를 받고 있다. 또 진천군과 음성군에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한국교육개발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 공공기관 11곳이 이전했다. 인구 유입에 따른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를 누리게 됐다는 얘기다. 이들 지자체는 공공기관들과 연계한 정보기술(IT), 바이오기술(BT), 태양광 등 신산업 부문의 기업을 적극 유치하면서 혁신도시로서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향후 발전 가능성도 높게 평가되는 이유다.
칠곡군과 화순군은 ‘인문학’과 ‘교육’이라는 키워드로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칠곡군은 지역 곳곳에 인문학 마을을 조성해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화순군은 ‘명품화순교육 실현 5개년 계획’을 통해 공교육 육성에 집중하고 있다.
성주인 농경연 연구위원은 “상위권에 포함된 작은 군들은 지방 광역자치단체 인근이거나 혁신도시로 지정된 경우다. 하지만 그런 입지 조건들을 기반으로 얼마나 특색 있는 콘텐츠를 개발했냐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수=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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