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대구 달서구에 있는 스리랑카 사원에서 만난 카타빌라 니말 씨(39)의 오른쪽 뺨엔 옅은 흉터가 남아 있었다. 인터뷰 중간중간 그는 마른기침을 내뱉으면서도 “후유증은 남아 있지만 한 사람의 생명을 구했다는 걸 생각하면 행복하다”고 말했다.
니말 씨는 자신의 이름뿐 아니라 ‘스리랑카 의인’으로도 종종 불린다. 그는 지난해 2월 경북 군위군의 한 주택 화재 현장으로 뛰어들어 집 안에 갇혀 있던 90대 할머니를 구했다. 당시 화재 현장 근처 과수원에서 일했던 그는 2013년 9월 고용허가제(E9) 비자를 받아 한국에 왔다. 하지만 3년 뒤 비자 만료로 미등록 체류자가 됐다. 그는 스리랑카에 있는 노모 생각에 집 안에 갇힌 할머니를 외면할 수 없었다고 한다. 니말 씨가 한국행을 결심한 것도 건강이 좋지 않은 부모님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서였다.
“그날 이후로 제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건강이에요. 화재 전까지는 정말 건강했는데, 지금은 에너지가 많이 없어요.” 한국어가 서툰 니말 씨는 인터뷰를 도와 통역을 해준 위지타완사 스리랑카 사원 주지 스님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아무런 안전장비 없이 불 속으로 뛰어든 대가는 컸다. 얼굴과 목에 2도 화상을 입었다. 그때 들이마신 연기로 기도와 폐가 손상돼 병원에서 한 달간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화상은 다 나았지만 폐는 아직 제 기능을 되찾지 못했다. 그는 “계단을 조금만 올라가도 숨이 찬다”며 “기침도 자꾸 나온다. 날씨가 추워지면 상태가 더 나빠질 텐데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는 “많은 한국인들이 도와줘서 정말 고마웠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6월 그를 9급 의상자로 인정했다. 미등록 체류자 신분인 그는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았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등록 체류자와 다름없이 그의 치료비 중 공단 부담분인 800만 원을 지급했다. 나머지 600만 원은 화재가 났던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보탰다. 정부는 그가 치료를 계속 받을 수 있도록 치료용 임시비자(G1)를 발급해줬다. 위지타완사 스님은 “사연이 알려진 뒤 전국 각지 한국인들이 사원으로 연락해 니말 씨를 돕고 싶다고 했다”며 “한국분들이 참 고마웠다”고 덧붙였다. 경남 사천에서 연락을 준 한 아주머니는 ‘요즘 이런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니말 씨는 건강이 좋지 않은 데다 취업이 불가능한 G1 비자여서 소득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자신이 받은 후원금을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건넸다. 위지타완사 스님은 “니말 씨가 스리랑카 사원에서 지내면서 이곳을 찾는 외국인 노동자 중 누군가가 병원비가 없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지갑 속 돈을 꺼내 건넸다”고 전했다. 스리랑카 고향 마을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이웃들을 위해서도 기꺼이 돈을 부쳤다.
자신에게 도움을 준 한국에 은혜를 갚는 이웃이 되고 싶은 니말 씨. 그러나 비자 문제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가 받은 치료비자는 내년 3월이면 기한이 만료된다. 외견상 병은 다 나아 치료비자 연장이 가능할지는 불투명하다. 그는 “E9 비자를 받으려면 스리랑카로 돌아가 시험을 봐야 하는데 내년 1월이면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나이를 초과한다. 한국에 계속 있고 싶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니말 씨를 돕는 법률사무소 관계자는 “한국 정부도 니말 씨의 사정을 알고 비자를 몇 차례 연장해줬지만 이제는 더 이상 연장하기 어려울 거라고 했다”고 전했다.
니말 씨는 “그래도 불길 속 할머니를 구한 그날 이후 저를 알아보시는 한국인들이 ‘고맙다’ ‘좋은 일 했다’고 칭찬해주신다”며 “동남아 노동자를 보는 안 좋은 시선이 조금이나마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여전한 차별에 대해선 “피부색이 달라도 똑같은 이웃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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