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나 점퍼처럼 수십만원씩 하는 겉옷을 누가 현금으로 사겠어요? 그런데 하루종일 카드결제가 안됐으니 장사를 공친거죠.”
서울 홍대 앞에서 여성옷 매장을 운영하는 A씨는 KT아현지사 화재로 인한 피해정도를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A씨는 “우리같은 경우는 보상기준을 어떻게 삼아야 하는지 우리도 난감하다”고 말했다.
KT가 아현지사 화재 닷새째 접어든 28일까지 소상공인에 대한 보상기준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화재 발생 다음날인 25일 오후 8시쯤 발빠르게 1차 피해보상안을 발표한 것과 대조적이다. 1차 피해보상안은 화재 피해지역 거주 가입자들에게 직전 3개월 요금의 평균치를 기준으로 1개월 요금을 감면해주는 내용이 골자였다.
KT는 “소상공인에 대한 피해보상은 별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혀, 아현지사 화재로 카드결제 장애 등 피해를 본 소상공인들에게 KT가 어떤 보상안을 제시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현재까지 카드결제가 100% 이뤄지지 않은 점, 이에 따른 피해액 산출 기준을 명확히 세우기 어려운 점 등을 들어 소상공인 피해보상안 발표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관측한다.
실제 광케이블이 아닌 동케이블을 사용하는 지역은 카드결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KT에 따르면 광케이블 복구는 대부분 완료됐지만 동케이블 매립지역의 복구율은 10% 수준이다. 구리로 만들어진 동케이블은 광케이블보다 무겁고 굵기 때문에 화재로 손상된 것을 복구하기가 쉽지 않다. KT는 동케이블 매립 지역에 무선 롱텀에볼루션(LTE) 라우터 1500대를 제공했고, 편의점 등은 가맹점 본사와 협의해 무선결제기 300여대를 공급했지만 복구율이 낮아 이곳 소상공인들은 여전히 장사에 지장이 있다고 토로한다.
서대문구 충정로에서 일하는 박모씨는 “어제 회사가 입점한 빌딩 지하상가 카페에서 결제를 했는데 안됐다”며 “오늘은 됐다 안됐다 하는 등 여전히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카드결제가 됐다 안됐다 하다보니 카페 사장이 손님에게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데 보기 안쓰럽다”며 “소상공인 피해 보상안이 제대로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인근 상인들은 카드결제뿐만 아니라 유선전화도 복구가 완벽히 안돼 답답한 상황이다. 충정로 인근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는 B씨는 “중국집은 배달이 생명인데 유선전화가 아직 복구가 안돼 착신전환했다”며 “어떻게 보면 KT도 장사하는 곳인데 규모는 다르지만 사업자 입장에서 보면 이걸 어떻게 보상을 요구할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B씨는 “나는 최소한의 피해액만 보상해달라고 요구할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지난 24일과 25일 유선전화 ‘장애’로 배달장사를 못했지만 장사를 위해 준비한 재료비와 5명의 이틀치 인건비, 임대료 등을 청구할 생각이다. 그는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넘어갈 생각”이라며 “바로 옆이 화재 현장인데 나가보니 24시간 일하는 것 같아 보기가 안쓰럽기도 하더라”고 말했다.
피해액 산출도 문제지만 정확한 피해를 가늠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홍대 인근에서 만난 상인 C씨는 “많지는 않겠지만 현금 장사한 카페들은 오히려 좋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장애가 발생했기 때문에 피해 보상은 받아야 하는데 현금장사로 괜찮은 수익을 올린 곳이 포함되는 게 좀 억울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인근 카페 사장 D씨는 “토요일 카드결제가 안되고 일요일 오후 3시쯤부터 됐는데 홍대 장사는 주말 장사 아니냐”며 “우리도 엄청난 피해를 봤다”고 반박했다. 자칫 피해 보상안을 두고 상인들간 감정 싸움으로 치달을 수 있는 모양새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 26일 유선통신3사 대표와 긴급히 만난 자리에서 “KT는 복구와 피해 보상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란다”고 말했다.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카드 결제가 일부 지역에서 여전히 불안한 점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 발언으로 해석된다.
KT 관계자는 “피해액 산출이 쉽지 않고 또 이번 장애건으로 더 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어떻게든 보상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며 “이 모든 것을 고려해서 실제 많은 피해를 본 소상공인분들에게 최대한 이른 시간 안에 보상안을 내놓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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