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신일철주금에 이어 일본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에게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며 이번 판결이 가져올 여파에 눈길이 모인다.
이번 판결은 지난달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를 확정한 뒤 대법원 소부에서 처음으로 같은 취지의 선고가 내려진 것이다.
대법원은 한일청구권협정이 있었다고 해도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미쓰비시 측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앞선 전합 판결과 마찬가지로 원고들의 손배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으로 청구권협정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29일 양금덕 할머니(87) 등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4명과 유족 1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또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같은 시각 정창희 할아버지(95) 등 강제징용 피해자 5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도 원심 판결대로 원고 승소를 확정했다.
이번 건은 미쓰비시의 강제징용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첫 대법원 판결이고, 근로정신대 소송에 대한 최초의 확정판결이기도 하다.
대법원 전합의 앞선 판결 취지에 따른 소부 판결이 나온 만큼 다른 관련 소송도 전범기업 측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유사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각급 법원에서 10여건이 심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한일 간 외교적 마찰은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당장 일본 정부는 이날 판결에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한국 대법원 선고 뒤 낸 담화에서 “이런 판결은 한일 청구권협정에 분명히 반(反)한다. 두 판결은 국교정상화 이후 쌓아온 한일 우호협력 관계를 근본적으로 뒤집는 것으로 극히 유감”이라며 국제재판 등 대응조치를 언급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30일 전합 선고 때와 마찬가지로 이날 중 이수훈 주일한국대사를 외무성으로 초치해 항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소송은 ‘양승태 대법원’ 당시 법원행정처가 청와대가 원하는대로 재판을 고의 지연시켰다는 의혹을 받는 대상이기도 하다. 재판을 미루는 대가로 법관 해외파견 자리를 얻어내려 한 정황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이에 일각에선 이번 대법원 판결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검찰 수사에 힘을 실어주지 않겠냐는 관측도 내놓는다.
다만 이미 핵심인물 중 한 명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기소된 만큼 이번 소송 결과와 무관하게 검찰 수사가 계획된 대로 진행될 것이란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임 전 차장 공소장엔 일선법원에 대한 법원행정처의 재판개입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묵인과 방조, 지시 등에 의해 이뤄졌다는 정황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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