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학생들 가해자로 몰면 반발… 성폭력 예방교육 소통에 비중을”
“아∼ 더러운 꼴페미(꼴통 페미니스트)들이 또 남자를 가해자 취급하네.”
올 8월 서울의 한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던 강사 A 씨는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A 씨가 성폭력 가해·피해자 통계 자료를 보여주자 남학생 중 서너 명이 의자를 걷어찼다. A 씨는 “분위기를 바꾸려고 애썼지만 그런 남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조치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고 말했다.
이런 애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와 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가 29일 ‘2018 남자 청소년 성교육 세미나’를 열었다. 160여 명의 청소년 성교육 전문가와 교사, 문화평론가 등이 서울 영등포구 하이서울유스호스텔에서 ‘백래시(backlash·사회 정치적 변화에 대해 나타나는 반발 심리 및 행동)’에 휩싸인 남자 청소년들의 사례를 공유하고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을 달랠 수 있는 성교육 대안을 모색했다.
참석자들은 올해 우리 사회를 강타한 ‘미투(#MeToo)’ 운동이 시작된 이후 여학생들은 남자 교사에 의한 성희롱과 성폭력 사건을 고발하고 ‘스쿨 미투’ 집회를 여는 반면 남학생들은 이런 분위기에 반발하는 현상이 강하게 나타나면서 남녀 간의 성 인식 격차가 커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는 9월 6일부터 30일까지 전국의 13∼18세 청소년 333명을 대상으로 미투 운동에 대한 인식을 조사했다. “모든 남자를 성폭력 가해자로 보는 것 같다”는 항목에서 남학생의 49.2%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여학생은 18.1%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또 “학교에도 여전히 성차별적 요인이 많다”는 항목에 대해서는 여학생의 63.9%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남학생들은 35.5%만이 동의했다. “미투 운동의 영향”에 대한 질문에 남학생이 가장 많이 답한 것은 ‘관심 없어서 잘 모르겠다’(39.5%)였지만 여학생은 ‘페미니즘과 성 평등에 관심이 생겼다’(60.8%)였다.
조민정 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기획팀장은 “미투 이후 성교육 시간에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난 변화는 남녀 청소년을 나눠서 진행하는 것도 ‘차별’이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생긴 것”이라며 “함께 대화하며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고 틈을 줄여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채윤 비온뒤무지개재단 이사는 “많은 성폭력 예방 교육이 남학생들이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교육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남학생들이 가해자로 느끼게 하기보단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피해자, 신고자, 피해자의 조력자 등 어떤 포지션이든 상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고등학생 이재건 군(17)은 “남녀 학생들이 ‘꼴페미’, ‘한남충’ 같은 혐오 표현을 그냥 재미로 따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게 서로에게 상처가 된다는 걸 나눌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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