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 산정기준 29년만에 상향 논의
택시운전사나 가사 노동자 등 정년이 없는 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일할 수 있는 나이)’은 몇 세일까? 1989년 대법원은 기존 만 55세이던 판례를 만 60세로 5년을 높였다. 이후 29년 동안 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은 만 60세였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평균수명이 늘고, 정년 연장 논의가 진행된다는 이유 등으로 최근 1, 2심에서 가동연한을 65세로 봐야 한다며 대법원 판례와 엇갈린 판결을 잇달아 내렸다. 이에 대법원은 29일 가동연한을 65세로 높일지를 두고 공개변론을 열었다. 대법원이 가동연한을 늘리면 가파른 노령화 속에 기업 정년과 노인 복지 등 여러 분야에서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 정년이 늘어나면 ‘소득 절벽’ 줄어
가동연한은 주로 일용직 노동자나 미성년자가 사고로 사망하거나 장애가 발생했을 때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는 기준으로 쓰인다. 가동연한 기준이 달라진다고 해서 당장 공무원이나 회사원, 전문직 종사자 등 기업 정년(停年)이 늘어나는 건 아니다. 정년은 기업 등에서 조직원이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면 자동적으로 퇴직하게 규정한 한계 연령을 뜻한다.
육체노동자가 아닌 직업군은 노동법을 손질해야 정년이 상향 조정된다. 60세 정년이 법제화한 것은 2013년 4월로 사업주가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하도록 의무화했다.
가동연한 상향조정은 정년 연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대법원 결정이 모든 근로자의 정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 계기로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되면 법을 개정해 정년이 65세로 올라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직장인 가운데 상당수는 50대 초중반이면 명예퇴직을 한다. 기업의 인건비 부담 때문이다. 이때부터 ‘인생 2막’을 시작해야 한다. 설령 정년을 채우더라도 일손을 놓기 힘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노인 빈곤율(46.7%) 1위인 우리나라 사정을 감안하면 60세 이후 근로는 바람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정년이 연장되면 무엇보다 ‘소득 크레바스(절벽)’를 좁힐 수 있게 된다. 현재 정년은 60세인 반면 국민연금은 2033년 이후 만 65세부터 나온다. 60대 초반 5년간을 ‘보릿고개’에 비유한다. 국민연금이 나올 때까지 버텨내야 하는 시기라는 의미다.
2년 전 은퇴한 박모 씨(62세)는 “정년이 연장되면 은퇴와 동시에 연금을 받게 되니 노후생활을 설계하기가 수월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초연금(25만 원) 지급을 비롯해 지하철 무료 이용, 인플루엔자 무료접종과 같은 각종 혜택도 만 65세부터 시작돼 정년이 연장되면 은퇴와 함께 각종 노인복지를 누릴 수 있게 된다.
○ 노인 기준 높아질 수도
장밋빛 미래만 있는 건 아니다. 정년 연장과 함께 노인 기준 자체가 현재 65세에서 70세로 높아질 수도 있다. 국내 노인 기준은 1964년 이후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이 때문에 노인 연령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이렇게 되면 65세에 은퇴해 70세에 복지 혜택을 받게 돼 다시 5년이란 ‘소득 크레바스’가 생긴다. 보건복지부 강민규 노인정책관은 “정년 연장은 노인 연령 기준 변경과 맞물린 문제”라며 “노인 일자리가 충분한지, 70세부터 노인 복지를 시작해도 무리가 없는지를 검토하며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우 인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일률적인 정년 상향보다 각자의 건강 상태나 근로 의지 등을 감안해 정년을 선택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윤종 zozo@donga.com·정성택·김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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