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최현진군(가명)은 친구로부터 ‘고액알바’가 있다며 같이 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퀵서비스 직원을 가장해 다른 사람의 체크카드를 받아 다른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전달만 하면 수십만원을 벌 수 있다는 게 친구의 ‘달콤한’제안이었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 최군은 다른 학교 친구 2명, 고등학교 1학년 생 1명과 함께 타인 명의 체크카드 14개를 받아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전달했다.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정효정양(가명)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고액알바’ 게시글을 보고 귀가 솔깃해 연락을 취했다. 정양의 전화를 받은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해 보이스피싱 피해자로부터 금융감독원 현금인수증을 제시해 돈을 받아 다른 조직원에게 전달하라는 임무를 줬다. 정양은 10회에 걸쳐 약 1억원 상당을 다른 조직원에게 전달했다.
60~70대 노년층을 주요 타깃으로 삼던 보이스피싱이 나이를 불문하고 청소년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성매매, ‘몸캠 피싱’(신체 일부를 실시간 노출하는 음란물을 미끼로 돈을 뜯어내는 범죄)을 넘어 보이스피싱의 ‘자금 전달책’ 역할을 맡기는 등 급전이 필요한 미성년자들이 범행 대상이 되고 있다.
9일 경찰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사기사건은 올해 10월까지 서울에서만 총 8050건, 1112억원 상당의 보이스피싱 피해가 일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청소년들은 주로 선배나 친구의 권유나 ‘고액 알바’ 등으로 꼬드기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게시물을 접해 보이스피싱에 가담하게 된다.
보이스피싱 사기단은 청소년들은 수금알바를 빙자해 학생들을 모집한 후, 고액의 일당을 제안하며 타인 명의 체크카드를 주고 피해금이 입금될 경우 ATM 등을 돌아다니며 즉시 인출하게 유도하는 것으로 수법을 사용한다.
또 배송 알바라고 속여 퀵서비스를 가장한 채 돌아다니며 체크카드를 수거해 오도록 지시하는 ‘대포통장 체크카드 수거책’을 맡기기도 했다.
몸캠 영상이 피싱 조직에 넘어가 사기단의 겁박을 받다가 금품을 마련하지 못하면 반강제적으로 홍보 알바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범죄조직도 이들에게 돈을 주면 범죄에 가담한 것이 되기 때문에 일부러 알바비를 주며 일을 배정해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전달책 역할을 하다가 성과를 인정받으면 전화를 돌리며 피해자를 직접 속이거나 범죄를 기획하는 업무도 맡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간 미성년자들이 주로 인터넷 물품 사기에 주로 가담해왔지만, 최근에는 보이스피싱 가담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오히려 성인들 보다 미성년자들이 순진해 겁박하기도 좋다는 점이 미성년자를 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사기단의 모집책 연령이 점차 낮아지는 것은 성인처럼 ‘먹튀’하는 사례가 적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액 알바’ 홍보 글은 네이버, 다음 등 포털사이트가 아니라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주로 이뤄지면서 경찰은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찰 한 관계자는 “해외 기업이라 게시물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개발해 압박하기 어렵고, 개인 간 주고받는 메시지 내용은 들여다볼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에따라 서울지방경찰청은 ‘보이스 범죄 예방’을 위해 보이스피싱 예방 수칙을 내고 “범죄인줄 모르고 단순알바로 알고 했다고 하더라도 범죄로 인한 피해자들의 피해는 막중하다”며 “미성년자라고 할지라도 범행 가담 정도에 따라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되므로 예방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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