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들을 향한 다각도의 사회적 관심이 일상적으로 쏟아지고 있지만 좀처럼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고 조명되지도 않는 10대들이 있다. 바로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이다.
트랜스젠더는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성과 성별정체성이 다른 사람을 뜻한다. 생물학적으로 남성이지만 성별정체성이 여성인 사람은 트랜스여성으로, 그 반대는 트랜스남성이라 부른다. 10대 시절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손쉽게 차별과 혐오에 노출된다. 학창시절 유무형의 폭력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트랜스젠더 4명을 각각 6일과 7일에 걸쳐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필통을 두고 온 날 친구에게 연필을 빌려달라고 했어요. 친구는 벌레를 보는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곤 제 말을 무시했습니다. 학교를 더 다니다가는 자살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트랜스여성 김겨울(26)씨가 자신의 청소년기를 회상했다. 김씨는 자신이 9살이던 해 가수 하리수씨를 통해 트랜스젠더라는 존재를 알게됐다. 김씨는 “자연스레 (트랜스젠더가) 내 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정체성을 고민하고 방황하는 시기는 짧았다”고 했다.
스스로는 성별정체성을 받아들였지만 주변은 그렇지 않았다. 학교가 유독 그랬다. 커밍아웃을 하진 않았지만 모두 김씨의 ‘다름’을 알고 있었다. 행동과 말투로 주변인들이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친구들에게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다. 옷 안으로 손을 넣어 몸을 더듬는 행위도 자주 당했다. 김씨는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므로 견뎠지만 고등학교 3년을 더 이렇게 다녀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며 “고1 때 자퇴를 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김씨뿐만이 아니라 인터뷰를 위해 만난 트랜스젠더 모두 10대 시절 학교에서부터 노골적인 혐오와 괴롭힘을 당했다. 남자고등학교를 다닌 트랜스여성 신우리(35)씨는 ‘여성이 되기 위한 교육’이라며 화장실에서 친구들로부터 구강성교를 강요당하기도 했다.
괴롭힘의 주체는 학생뿐만이 아니었다. 신씨는 “하리수가 데뷔하면서 교사마다 성소수자에 대한 비하발언을 했었다”며 “어떤 체육교사는 나를 (트랜스젠더를 줄여서) ‘젠더’라고 학생들 앞에서 대놓고 불렀다”고 떠올렸다.
또래와 교사들에게 당한 괴롭힘은 고스란히 자신을 향한 폭력으로 이어졌다. 트랜스여성 류세아(28)씨는 “학창시절 손목과 팔은 온통 칼자국이었다”며 “손톱을 뽑거나 스스로 목을 조르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학교 안에서 이들이 도움을 받을 곳은 없었다.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한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성소수자 중 86.5%가 괴롭힘을 받은 사실을 교사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고1 때 자퇴한 김겨울씨는 “나를 이해해주고 격려해주는 교사가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친구들이 날 대놓고 괴롭히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트랜스젠더들의 삶을 좌우하는 데 학창시절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이종걸 한국게이인권 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은 “학교는 트랜스젠더 학생들이 가족을 벗어나 처음으로 겪는 ‘공적인 공간’이자 사회적으로 첫 발을 내딛는 곳”이라며 “남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반응들이 결국 자신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라고 굳어져 버릴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대표는 “현재 학교에서는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청소년들을 울타리 밖으로 내몰고 있다”며 “존중받지 못하고 지지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은 그 이후에도 외로움과 우울증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학교 교육 현장이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2015년 교육부가 체계적인 성교육을 하겠다며 도입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이 대표적이다. 해당 치짐에는 다양한 성적 지향을 가리키는 용어 사용을 금지하고 기존 교육안에 있었던 성소수자 관련 내용을 삭제하라고 돼있다. 이종걸 사무국장은 “학교 성교육 표준안 때문에 성교육 젠더감수성이 후퇴됐다”며 “교육부에서 반드시 수정을 해야한다”고 짚었다. 교사들에 대한 정기적인 성소수자 인권교육도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정민석 대표는 “이성애 위주의 답답한 감옥에서 인권감수성이 있는 교사를 만나는 것이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성소수자 학생들의 유일한 희망”이라며 “스스로가 만나보지 못했고 경험이 없기 때문에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성소수자 학생을 만나면) 당황스러워하는 교사들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자와 만난 트랜스젠더들은 청소년 시절 남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상처를 너도나도 하소연하듯 털어놓았다. 누군가에게는 10년도 훌쩍 넘은 옛 이야기였지만 여전히 가슴 안에 상처가 자리해있는 듯했다. 어떤 이들은 힘들었던 기억 속에 잠겨 눈시울이 붉어졌다. 자기는 덜 힘들었던 편이라며 웃어보이기도 했다. 가끔은 침묵도 흘렀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공감’과 ‘위로’의 침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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