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화재참사 1년…건물주 책임 vs 국가 책임 공방 ‘여전’

  • 뉴시스
  • 입력 2018년 12월 17일 09시 46분


코멘트
송년 분위기가 무르익던 지난해 12월21일 충북 제천시 하소동의 한 복합건축물에서 전혀 예기치 못한 화재가 발생하면서 29명이 숨지고 40명이 다치는 참사가 빚어졌다.

오는 21일로 참사가 발생한 지 꼭 1년이 되지만, 제천화재참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건물주 등 책임 인정한 1심 판결

건물주 이모(54)씨와 직원 등 5명은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참사 발생 1년을 하루 앞둔 20일에는 이들에 대한 4차 공판이 대전고법 청주재판부에서 열린다.

청주지법 제천지원은 지난 7월13일 1심 선고에서 화재예방·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건물주 이씨에게 징역 7년 실형과 함께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화재 발생 당일 건물 1층 천장에서 얼음 제거 작업을 해 화재의 실마리를 제공한 혐의(화재예방법 위반 등)로 구속기소된 관리과장 김모(52)씨에게는 징역 5년의 판결을 내렸다.

같은 혐의로 역시 구속기소된 관리부장 김모(67)씨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고 16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건물 2층 여탕 이용자들의 대피를 돕지 않은 혐의(업무상과실치사 등)로 불구속기소 된 카운터 직원 양모(42·여)씨와 세신사 안모(52·여)씨는 금고 2년에 집행유예 4년, 120시간 사회봉사명령을 각각 내렸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각자의 지위에 따른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음을 인정할 수 있다”며 검찰의 공소사실 대부분을 인정했다.

검찰과 변호인 측은 1심 판결에 즉각 항소하면서 건물주와 직원 등의 법정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소방지휘부·국가 책임 논란

법원과 검찰이 건물주 등의 책임을 인정했지만, 화재 당시 소방지휘부에 대한 책임 논란은 여전하다.

충북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이상민 전 제천소방서장과 김종희 전 지휘조사팀장 등 당시 소방지휘부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 의견을 달아 지난 5월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청주지검 제천지청은 이들의 불기소 처분을 권고한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의 결정을 받아들여 지난 10월18일 이들 2명의 소방관을 기소하지 않기로 했다.

화재 당시 인명구조를 소홀히 한 혐의를 적용한 경찰 수사 결과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경찰은 화재 현장에서 시뮬레이션을 재연하면서까지 소방지휘관의 대처 소홀을 입증하려 했지만, 검찰의 불기소 처분으로 경찰의 수사는 수포가 됐다.

검찰이 당시 소방지휘관을 불기소 처분한 것은 제천화재 참사의 국가책임을 사실상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소방청 소방합동조사단이 두 차례 조사 결과 발표에서 “소방설비와 불법 주차뿐만 아니라 소방지휘관의 판단 잘못 등에 원인이 있다”고 당시 소방지휘부의 과실을 분명히 밝혔음에도 국가기관인 검찰이 소방지휘관을 불기소 처분한 것에 유가족들은 더욱 분개했다.

제천화재참사 유가족대책위원회는 검찰의 소방지휘관 불기소 처분에 강하게 반발했다.

유가족대책위는 지난달 29일 검찰에 항고장을 제출했다.

유가족대책위가 이날 발표한 입장문에서 “해경을 처벌한 세월호 참사와는 달리 제천화재참사는 건물주와 세신사 등 개인들에게만 책임을 돌릴 뿐 국가는 책임이 없다고 결론 지으려고 한다”며 검찰의 소방지휘관 불기소 처분에 강한 불만을 털어놨다.
형사소송법은 검사의 불기소 처분에 이의가 있으면 고등검찰청에 항고해 불기소 처분 시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소방지휘관 불기소 처분은 대검이 수사 자문기구의 권고를 수용한 결정이어서 검찰 스스로 이를 번복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유가족대책위는 재정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재정신청은 검찰의 기소독점주의 폐단을 막고자 법원에 제기하고, 법원이 공소 제기를 결정하면 검찰은 당시 소방지휘관을 기소해야 한다.

유가족대책위가 검찰에 항고한 것도 재정신청을 위한 절차로 해석된다.

유가족들은 화재 당시 2층 여탕에 많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소방당국이 신속하게 구조 시도를 하지 못하는 등 늑장 대응으로 피해를 키웠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가족들이 제천화재 참사를 건물주 책임뿐만 아니라 국가 책임도 묻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전체 희생자 29명 가운데 여탕에서 숨진 여성이 18명에 이른다.

지난 10월 충북도에 대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과 함께 유가족에 대한 성의 있는 보상을 언급했다.

충북도는 이에 따라 유가족들에게 모두 70억원의 보상금을 제시하며 합의를 요청하고 있지만, 도가 합의서에 ‘다른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한다’는 조건을 달아 유가족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사회재난 원인제공자 구상권 청구

제천화재참사 당시 사회재난 구호·복구 지원에 관한 조례는 충북에서 같은 해 9월29일 처음으로 시행한 충북도밖에 없었다. 시·군에서는 관련 조례를 제정·시행한 곳이 한 곳도 없었다.

제천화재참사는 시·군에서 사회재난 구호·복구 지원 조례 제정을 서두르게 하는 계기가 됐다.

옥천군이 이번 정례회에서 관련 조례를 제정하면 도와 11개 시·군에서는 사회재난 지원 조례를 모두 제정한다.

이런 가운데 청주시는 이번 정례회에서 피해 주민에게 장례비와 치료비 등을 지원하고 재난 발생 원인제공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한다.

원인제공자, 즉 사회재난 발생의 원인을 가려내서 시가 부담한 지원금액을 청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당연히 책임 소재도 가려내야 한다.

제천화재 참사에서는 국가가 8억원, 충북도가 6억2600만원의 긴급재정 지원을, 제천시가 사망자와 부상자 생계안정 등으로 6억300만원을, 보험사가 위자료·장제비 등으로 28억700만원을 보상하고 성금 6억7300만원 등 모두 60억6200만원을 지원했다.

【제천=뉴시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