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판 살인의 추억’ 피의자 어떻게 9년 만에 구속됐나

  • 뉴스1
  • 입력 2018년 12월 22일 11시 46분


구속영장 발부 소식에도 ‘무덤덤’…구속적부심 문의
미세섬유 교차 추가 확인·프로파일러 분석 등 ‘주효’

지난 2009년 2월 제주시 애월읍 고내봉 인근 배수로에서 목 졸려 숨진 채 발견된 이모씨(당시 27·여) 피살사건의 유력 용의자 박모씨(49)가 21일 제주시 동부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경찰은 박씨를 이날 오전 대구에서 검거, 제주공항을 통해 압송했다. 경찰은 사건발생 후 3년4개월 간 수사를 벌였으나 범인을 찾지 못한 채 2012년 6월 수사본부를 해체했다. 경찰은 2015년 살인죄 공소시효가 폐지되자 지난 5월 이씨를 검거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증거부족으로 기각됐다.2018.12.21/뉴스1 © News1
지난 2009년 2월 제주시 애월읍 고내봉 인근 배수로에서 목 졸려 숨진 채 발견된 이모씨(당시 27·여) 피살사건의 유력 용의자 박모씨(49)가 21일 제주시 동부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경찰은 박씨를 이날 오전 대구에서 검거, 제주공항을 통해 압송했다. 경찰은 사건발생 후 3년4개월 간 수사를 벌였으나 범인을 찾지 못한 채 2012년 6월 수사본부를 해체했다. 경찰은 2015년 살인죄 공소시효가 폐지되자 지난 5월 이씨를 검거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증거부족으로 기각됐다.2018.12.21/뉴스1 © News1
‘제주판 살인의 추억’으로 불리는 2009년 어린이집 보육교사 살인사건 피의자 박모씨(49)는 사건 발생 9년 만에 구속되면서 무덤덤한 태도를 보였다.

제주지방법원은 지난 21일 오후 7시50분 강간살인 혐의 등을 받고 있는 박씨에 대한 구속영장실질심사를 통해 “사안이 중대하고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날 오후 3시 영장실질심사에 들어가기 전 박씨는 “심경이 어떤가” “억울합니까”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40여분간 심사를 받고 나온 박씨는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다. 기필코 아니다”면서 “똑같은 일로 다시 불러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도 박씨는 일관되게 자신의 범죄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속영장 발부 통보를 들은 박씨는 별다른 반발을 하지 않으며 무덤덤하게 “구속적부심을 빨리 할 수 있느냐”고 물은 것으로 확인됐다.

구속적부심이란 피의자의 구속이 과연 합당한 지를 법원이 다시 판단하는 절차로, 누구나 수사기관으로부터 구속을 당했을 때 관할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주말이라 당장은 어렵다는 답변을 들은 박씨는 “개인 사정상 불구속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양수진 제주경찰청 강력계장은 “입감 과정에서는 억울하다고 얘기했지만 구속 사실을 통지하자 억울하다는 말이 없이 무덤덤한 태도를 보였다”며 “법원에서 증거를 받아들일지 몰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직접 증거 없이 9년 전 사건의 피의자 박씨가 구속된 이유는 무엇일까.

택시기사였던 박씨는 2009년 2월 1일 새벽 귀가하던 어린이집 보육교사 이모씨(당시 27세)를 택시에 태워 목졸라 살해한 뒤 제주시 애월읍 고내봉 인근 배수로에 버린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당시에도 여러 정황을 토대로 실종 당일 숨진 것으로 수사를 벌였지만 부검에서는 시신이 발견된 8일을 기점으로 24시간 이내에 숨졌다는 의외의 결과가 나오면서 혼선을 겪었다.

정확한 범행 시간도 추정하지 못한 채 사건을 종결했던 경찰은 살인죄 공소시효가 폐지되면서 수사를 재개했다.

경찰은 올해 동물 사체 실험을 통해 9년 만에 범행 시간을 피해자가 실종된 당일로 특정지었다.

특히 당시 피해자가 입었던 옷(무스탕)의 미세섬유가 박씨의 옷에서 발견됐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사건 이후 제주를 떠나 다른 사람 명의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별다른 의료기록 조차 남기지 않는 등 박씨의 행적도 수상하게 여겼다. 2015년부터는 주민등록도 말소된 상태였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법원은 미세섬유가 동일한 것이 아니라 유사하다는 의미에 그쳐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직접 증거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경찰은 7개월간 기존 미세섬유 증거를 보강하고 과거 CCTV 화질도 개선해 구속영장을 재신청했다.

특히 박씨가 몰았던 택시 운전석과 트렁크에서 피해자의 무스탕과 치마 섬유가 추가로 다량 발견됨에 따라 경찰은 범행 입증에 확신을 가졌다. 피해자의 어깨에서도 박씨의 옷 섬유가 발견됐다.

경찰은 물리적인 접촉 없이 단순 택시 탑승 만으로 다량의 섬유가 교차됐을 리 없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지난 2010년 청주지방법원에서 진행된 강간치상 재판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간에 교차된 섬유를 증거로 채택한 판례를 제시하기도 했다.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박씨의 과거 행적과 진술 성향 등을 분석한 결과 박씨가 범인이 맞다는 의견이 도출됨에 따라 이 내용도 증거로 제출했다.

결국 법원이 범죄 혐의가 소명됐다고 판단해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사건 발생 9년 만에 경찰은 피의자를 송치할 수 있게 됐다.

(제주=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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