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안심특별시’라더니…5년 지났지만 아직은 미흡 ‘안심귀가제도’

  • 뉴스1
  • 입력 2018년 12월 23일 07시 20분


서비스 만족도 높지만…인력·예산·관리 ‘0점’
전문가들 “효율 높이고 치안 사각지대 줄여야”

서울시 ‘여성 안심귀가 스카우트’ 연모씨와 나모씨가 10일 밤 서울 마포구 망원동 골목을 순찰하고 있다. 2018.12.10/뉴스1 © News1
서울시 ‘여성 안심귀가 스카우트’ 연모씨와 나모씨가 10일 밤 서울 마포구 망원동 골목을 순찰하고 있다. 2018.12.10/뉴스1 © News1

#어둠이 내린 서울 홍대 번화가 옆 골목. 술에 취한 남성들이 귀가하던 20대 여성 정모씨의 앞을 가로막았다. 놀란 정씨가 움찔하자 곁에 있던 여성 2명이 앞으로 나서며 남성들을 제지했다. 늦은 밤 홀로 귀가하는 여성의 밤길을 동행하는 ‘여성 안심귀가 스카우트’들이다.

여성 범죄가 사회 주요문제로 대두하면서 이를 근절하기 위한 슬로건과 정책이 매년 쏟아지고 있지만, 부실한 사후관리 탓에 ‘전시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도 ‘여성안심특별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내 25개 자치구에서 안심귀가 스카우트 제도를 운용하고 있지만, 5년간 누적이용률이 10%에 그친 데다 예산까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번화가와 1인 가구가 밀집한 마포구의 안심귀가 스카우트는 10명에 불과하고, 최근 공분을 샀던 ‘전처 살인사건’ 범행지인 서울 강서구 등촌동은 서비스조차 제공되지 않는 지역으로 확인됐다.

<뉴스1>은 서울 마포구에서 활동하는 ‘안심귀가 스카우트’들과 동행하면서 인력·예산·관리 모두에서 ‘총체적 난국’에 놓인 ‘여성 안심귀가 제도’의 실태를 뜯어봤다.

◇만족도는 높은데…10% 밑도는 이용률에 인력난도 ‘심각’

“어머니들이 먼저 상냥하게 말을 걸어오세요. 같이 수다 떨다보면 마음도 편해져요.”

오후 10시쯤 서울 마포구 망원동 골목에서 취객의 시비와 맞닥뜨렸다가 안심귀가 스카우트들의 도움을 받은 정씨는 “오늘까지 두 번째 서비스를 이용했는데 매우 만족스럽다”며 “골목이 어두워 불안했는데 마음이 놓인다”고 밝게 웃었다.

마포구 일대에서 활동하는 안심귀가 스카우트들은 매주 평일 오후 10시가 되면 서울 마포경찰서 산하 지구대와 파출소로 출근한다. 근무복과 경광봉을 챙긴 스카우트들은 인근 지하철역 앞에서 여성들을 만나 집까지 동행한다.

스카우트의 업무는 서비스 신청자에 대한 귀가 동행 외에도 Δ어두운 골목 및 우범지역 순찰 Δ홀로 귀가하는 여성 동행 제안 Δ안심귀가 스카우트 서비스 홍보 등 다양하다.

열정적인 활동만큼 이용자의 만족도도 매우 높다. 이날 처음 서비스를 이용했다는 20대 여성 박모씨는 “스카우트 어머니들이 정겹게 말을 걸어준 덕에 안심하며 집으로 왔다”며 “앞으로 계속 이용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저조한 이용률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안심귀가 서비스 누적 이용건은 53만4402건이었다. 서울시에 거주하는 여성인구(499만5171명) 대비 10.7%, 서비스 주이용층 인구(15~39세 여성) 대비 30.1%에 불과한 수치다. ‘이용해 본 사람’만 다시 이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 이용률은 더 떨어진다.

설령 이용률이 오르더라도 ‘인력난’ 문제가 생긴다. 마포구의 여성인구는 18만명에 달하지만 안심귀가 스카우트는 10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인 1조로 활동해야 하는 규정을 고려하면 1개 팀이 여성 3만6000명의 귀갓길을 책임져야 하는 셈이다.

◇이용 10배 늘었지만 예산은↓…부실한 관리에 통계도 없어


저조한 이용률과 인력난은 부족한 예산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서울시에 따르면 안심귀가 서비스 이용건수는 2013년 3만1587건에서 2017년 32만2704건으로 5년 사이 10배이상 뛰었지만, 같은 기간 예산은 27억원에서 38억여원으로 42.7%만 늘었다. 이마저도 2015년 예산 43억여원 대비 5억원 가까이 줄었다.

허술한 관리도 제도의 빛을 바랜다. 뉴스1 취재 결과, 서울시는 지금까지 안심귀가 제도를 담당관 1명에 전담시켜 관리해왔다. 이마저도 잦은 인사교체 탓에 서비스 운영 5년이 지나고도 제대로 된 통계조차 만들어지지 못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안심귀가 스카우트 제도는 별다른 부서나 팀이 아닌 담당관 1명이 총괄하고 있다”며 “서비스 제공지역에 대한 현황이나 통계는 아직 작성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서울시 25개 자치구 전면 시행’ 홍보문구를 한 꺼풀 걷어내면 구멍이 속속 드러난다. 최근 사회적 공분을 샀던 ‘전처 살인사건’의 범행지인 서울 강서구 등촌동이 대표적이다.

전처 살인사건은 지난 10월22일 40대 여성 이모씨가 전 남편 김모씨(49)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사건이다. 이씨의 가족은 무려 25년 동안이나 김씨의 폭력과 살해협박, 스토킹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들은 끝없이 쫓아오는 아버지를 피해 거주지를 6번이나 옮겼지만, 정작 마지막 거처였던 등촌동은 올해 안심귀가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지역이었다.

김씨의 범행과 안심귀가 서비스의 관련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숨진 이씨나 그의 가족이 김씨의 폭력을 우려해 안심귀가 스카우트를 신청했더라도 서비스 제공이 불가능했던 셈이다.

◇“부실관리로 전시행정 돼선 안 돼…‘치안 사각지대’ 없애야”

전문가들은 “좋은 취지로 만든 제도가 허술한 관리와 부족한 예산 탓에 전시행정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체계적으로 인력과 자원을 확보하고 사업을 확대해 ‘치안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웅혁 건국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큰 틀에서 안심귀가 스카우트 제도를 보면 제도적 취지는 상당히 좋다”고 평가하면서도 “서울시가 5년 동안 서비스를 시행했음에도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것은 아쉽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지속가능한 서비스가 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인력과 자원 확보’가 필수적”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그저 보여주기식 사업(전시행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이윤호 동국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안심귀가 스카우트 제도만 확충할 것이 아니라 민·경·관 차원의 사업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면서 “경찰과 시·구청뿐 아니라 방범순찰대나 해병전우회 등 민간 인력까지 나서서 ‘치안 사각지대’를 없애는 방향으로 제도를 다듬어가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실제로 안심귀가 제도 시행에도 불구하고 여성범죄는 꾸준히 증가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여성 피해자 비율은 23.8%에서 25.4%까지 늘었다.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 범죄는 최근 5년 사이 8만5000여건에서 9만4000여건으로 10%, 강제추행은 1만2800여건에서 1만6200여건으로 26% 증가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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