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까지 공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진수정 씨가 주얼리 사업체 ‘오드블랑’의 대표가 된 것은 우선 ‘아이’를 위해서였다. 2011년 돌을 맞은 딸에게 평범한 순금반지보다 특별한 선물을 주고 싶었다. 산부인과에서 출생증명서에 찍어줬던 아기의 발도장이 떠올랐다. 1년 전 딸아이의 그 순간을 영원히 ‘봉인’해 간직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금속공예를 배워 조그만 원형 펜던트 안에 아기 발도장이 찍힌 선물을 준비했다.
○ ‘내 아이’ 발도장 인장 주얼리
주변의 권유로 참가한 주얼리 디자인 공모전에서 이 ‘인장 주얼리’가 수상을 하면서 진 씨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 직장을 그만둔 후 본격적으로 전문가에게 금속공예를 배우고 2015년 12월 사업체를 냈다. 처음에는 워킹맘들의 호응을 얻었다. 인장 아이디어를 확장하자 해외에서도 반응이 왔다. 일본에서는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의 발도장 주얼리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미국과 유럽에서는 사망한 가족을 추모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가족의 지문을 담은 주얼리를 만들어 달라는 이메일이 왔다.
진 씨는 “수출 실적은 올 3분기부터 많았다”고 전했다. 석 달간 중국에 1억 원어치를 수출했다. 본격적인 수출이 가능해진 데는 서울시 주얼리지원센터의 ‘소규모 업체 브랜딩 경영 컨설팅’의 도움이 컸다. 진 씨는 “귀금속 수출은 순도에 따라 관세 코드가 다르게 매겨지는 등 까다로운 편이라 세무, 관세에서 소상공인에겐 어려운 게 많았다”고 말했다. 이때 서울시가 마련한 컨설팅에서 계약서 작성법이나 유의점에 대해 전문가 그룹 강의를 듣고 질의응답을 하면서 유용한 정보를 얻었다. 서울시 주얼리지원센터 관계자는 “소규모 주얼리 제조업체를 고부가가치 브랜드로 만드는 브랜딩과 판로 개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 ‘내가 사랑하는 것들’ 담은 패션
“사실 이건 처음 이야기하는 건데…제 결혼기념일과 저와 제 아내의 이니셜입니다.”
19일 서울 동대문구에서 만난 패션 브랜드 ‘만지’ 대표 김지만 씨(35)가 자신의 카키색 점퍼에 새겨진 글자를 가리켰다. 알록달록한 색깔로 자수가 새겨진 ‘12.3ME’라는 글자였다.
김 씨는 2011년을 삶에서 가장 어두웠던 해로 기억한다. 도전했던 의류 사업이 실패하며 6000여만 원의 빚을 졌다.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던 힘든 때 ‘결혼하자’고 손을 내민 여자친구와 가정을 꾸리며 2막이 열렸다. 낮에는 회사를 다니고 밤에는 그림 실력을 살려 ‘그라피티’ 벽화를 그리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1년 만에 빚을 갚고 2013년 2월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그라피티 자수를 새겨 넣는 패션 브랜드 만지를 론칭했다. 본인의 이름을 거꾸로 한 브랜드명 만지의 캐치프레이즈는 그룹 ‘퀸(Queen)’의 노래 제목이기도 한 ‘Love of My Life’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디자인에 담았는데 소비자들은 그것에 자기 방식대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아요.”
만지는 국내에서 먼저 입소문을 탔고 중국인들이 반응을 보였다. 서울 명동의 8평짜리 매장에서 하루 평균 1200만∼1300만 원의 매출이 나왔다. 2016년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사태로 매출에 타격을 입기도 했지만 만지 브랜드는 오히려 올 1월과 9월 중국 쑤저우와 상하이에 매장을 열었다. 내년에는 베이징과 항저우에도 3, 4호점을 열 계획이다.
김 씨가 바이어 주문을 받으며 중국 시장을 열게 된 계기는 지난해 11월 참가했던 서울시의 ‘하이서울쇼룸’이다. 매해 가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진행되는 하이서울쇼룸에서는 소상공인 의류 브랜드 업체들의 패션쇼뿐 아니라 바이어 유치와 수주 상담회 개최, 홍보 등을 연계해주고 있다. 김 씨는 “패션스쿨 등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거치지 않고 장사로 시작하면 정통 브랜드 시장에 데뷔하기 어려운데 이 쇼룸에 입점하며 서울시 보장 아래 바이어에게 옷을 선보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시 패션정책팀 관계자는 “일상생활에서 소상공인 브랜드를 홍보하는 ‘서울 365패션쇼’ 개최와 우수 봉제인들에게 ‘Made in Seoul’ 인증을 제공해 일감과 연계하는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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