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이 지났지만 변한 게 전혀 없어요. 우리 두 아들을 떠나보낸 뒤에라도 보일러 설치 시스템과 관리감독을 엄격히 했더라면 이런 아픔이 반복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충남 서산시에 사는 A 씨(40·여)는 26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힘겹게 말을 꺼냈다. 그는 집 보일러 배기통이 분리되는 사고로 유치원생과 초등생인 두 아들을 잃었다. 무자격자가 보일러를 설치한 뒤 배기통이 이탈해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18일 10명의 사상자를 낸 강릉 펜션 일산화탄소 누출 사고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충남 서산경찰서에 따르면 사고가 일어난 건 2월 7일이었다. 전날 밤 A 씨는 아이들 방에서 B 군(7)과 C 군(9)을 재우며 “잘 자”라는 말을 건넸다. 이게 두 아들과의 마지막 대화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밤새 고드름이 낙하하면서 A 씨의 집 보일러의 외부 배기통에 충격을 가해 베란다에 있던 배기통과 보일러가 분리됐다. 아침에 아이들 방의 문을 열었을 때 두 아들은 이미 일산화탄소에 중독돼 의식이 없었고, 결국 목숨을 잃었다.
경찰 조사 결과 설치 당시부터 배기통과 보일러를 연결하는 홈이 딱 맞게 결합되지 않아 살짝 빠져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외부 배기통이 낙하한 고드름에 맞아 충격을 받으면서 보일러와 배기통이 분리된 것으로 조사됐다. 무자격자가 보일러를 설치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하지만 검찰은 보일러 대리점주와 설치업자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지 않고 무자격 시공만 문제 삼아 약식기소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가 나기 전까지 약 8개월 간 사용했지만 문제가 없었고, 부실 공사가 사고에 영향을 미쳤다고 진술해줄 만한 기관도 없었다”고 말했다.
유가족이 반발해 6월에 고소장을 제출했고 재수사가 진행됐다. 그때서야 수사당국은 대리점주와 설치업자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경찰 관계자는 “처음 수사를 지휘한 검사는 설치 당시의 문제점과 사고 간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판단해 수사를 종결시켰다”며 “재수사를 맡은 검사는 당초 공사가 잘못됐기 때문에 고드름이 낙하했을 때 배기통이 분리됐다고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대리점주와 설치업자는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보일러 업계 관계자들은 무자격자가 보일러를 설치하는 관행이 뿌리박혀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보일러의 배기통이 분리돼 가스가 누출되면 치명적인 위험을 가할 수 있지만 이에 반해 단속이나 처벌은 약하다는 것이다. 20여 년 동안 보일러 업계에 근무한 심상조 씨(43)는 “주로 대리점주만 자격증이 있고 실제 설치를 하는 업자들은 90%이상 무자격자라고 보면 된다”며 “이런 관행이 바뀌지 않는 이상 비슷한 사고는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A 씨는 매일 아이들이 묻힌 곳을 찾아가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10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이들을 떠나보낸 것 같지 않아요. 잠깐 여행을 갔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지금이라도 보일러 설치와 관리 시스템을 잘 마련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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