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돈 침대’ 이용자 가운데 암을 비롯한 각종 질환과 투병하는 환자들은 올 5월 라돈 침대 파문이 불거지기 전까지는 대부분 마땅한 발병 원인을 찾지 못했다. 라돈이 발병 원인인지 여부는 과학적 검증이 필요하지만 이들로선 1급 발암물질인 라돈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
하지만 정부와 제조업체인 대진침대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피해자 조사나 보상을 미루고 있다. 라돈 침대 이용자들은 법정에서라도 피해를 인정받기 위해 소송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 전수조사조차 이뤄지지 않는다면 승소 가능성이 낮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 피해자 ‘자력구제’로는 승소 어려워
본보가 26일 로덱법률사무소를 통해 입수한 라돈 침대로 질병을 호소하는 이용자 505명의 소송서류를 분석한 결과 갑상샘 질환을 호소하는 사람이 117명(갑상샘암 73명 별도)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폐질환 83명(폐암 29명 별도), 유방암 44명, 자궁암 등 부인과 질환 36명, 뇌질환 17명 순이었다.
라돈은 폐암 등 폐질환을 유발한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하지만 유전이나 흡연, 대기오염이 아닌 라돈 때문에 폐암이 발병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법정에서 입증해야 한다. 라돈 침대를 10년간 사용했던 이모 씨(59)는 폐암으로 3년째 투병하고 있지만 소송에 필요한 의사 소견서를 받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 씨는 “의사들이 ‘라돈으로 폐암이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은 하지만 소견서를 써주는 건 법정에 나와야 하기 때문에 꺼린다”고 말했다.
다른 질환의 경우 라돈과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게 더욱 어렵다. 법원이 라돈을 발병 원인으로 인정하려면 최소한 라돈 침대 사용자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의 발병률을 조사한 결과가 뒷받침돼야 한다. 대법원은 2014년 각종 질환을 앓는 흡연자들이 담배회사와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이 같은 비교 분석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했다. 환경 관련 소송을 많이 다룬 최재홍 변호사는 “라돈 피해자들에 대한 정부의 전수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한 재판부의 전향적 판단에 기댈 수밖에 없다”며 “원전 근처 주민들의 갑상샘암 피해를 인정한 1심 판결이 있지만 흔치 않은 사례”라고 말했다.
○ 정부-대진침대 ‘네 탓’ 공방
대진침대는 올 7월부터 충남 천안 본사에서 매트리스 5만4000여 개를 해체했고, 당진항 야적장에 쌓여있던 1만6000여 개도 10월에 본사로 옮겨 해체했다.
정부는 피해자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소관부처인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대진침대 매트리스 29종의 표본을 분석하고 있지만 이용자 조사 계획은 아직 없다. 원안위 관계자는 “베개를 베거나 매트리스 커버를 씌우면 피폭량은 급격히 줄어든다”며 “피해가 명확히 드러난 게 없고 우려만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임종한 인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정부가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방기하고 있다”며 “매트리스 조사와 더불어 이용자 자료를 파악해 장기 추적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진침대와 정부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정부는 관련 소송을 진행 중인 서울중앙지법에 “대진침대가 라돈 매트리스를 만들어 유통하는지 알 방법도 없었고 이를 관리할 의무도 없었다”는 내용의 서면을 제출했다. 반면 대진침대는 “정부 기관으로부터 시험검사와 안전인증을 제대로 받았기 때문에 방사능 위험을 전혀 알 수 없었다”고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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