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들 미안한 감정 담아 49재 함께 준비해
“선언적 의미뿐인 최저주거기준 법제화 촉구”
“죽은 자들은 내세로 떠나고 살아남은 자들은 슬픔을 거두고 탈상을 하는 시기라고 하지만, 49일간 우리의 현실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7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 참사 49일째인 27일 오후, 고시원 앞 인도에 이날 하루 동안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작은 분향소가 설치됐다. 국일고시원의 간판은 떼어졌지만, 건물 안팎이 불에 타고 그을린 참혹한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분향소를 마련하게 된 배경에 대해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생존자들이 살아남은 데 대한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며 “수년간 옆방과 아래 위로 함께 살던 동료들의 죽음에 대해 분향 한 번 하지 못하고 인사도 드리지 못한 데 대한 원통함이 있어 49재를 함께 준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주거권네트워크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분향소 설치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일 고시원 참사를 만든 근본 원인은 화재가 아니라 열악한 곳에 사람이 살도록 용인한 우리의 주거 현실”이라며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먼저 화재로 거처를 잃은 피해 생존자들에 대한 주거 지원이 당초 정부의 확언과 달리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32명의 피해 생존자 중 임대주택에 입주한 이들이 10명 남짓에 불과한 상황이다.
이들은 “종로구는 최장 20년 입주 가능한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을 안내하지 않고 6개월을 기한으로 하는 ‘이재민 공공임대주택’을 신청할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만을 물었다”며 “누가 6개월 후 반납해야 하는 임대주택에 들어가며 세간을 장만하겠는가”라고 꼬집었다.
이에 더해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제공된 임대주택 후보지 91개 호 중 종로 지역에 있는 것은 한 호도 없었다”며 “거주자들은 걸어서 몇 분 거리에 일터와 지하철이 있어서 고시원을 선택했다. 도시빈민들의 가난한 삶은 교통의 요지에서 펼 수밖에 없다”고 실효성 문제도 함께 제기했다.
이들은 또 “현행법은 오래된 고시원 등 다중생활시설에 대해서는 안전시설 기준이나 건축기준을 지키지 않도록 허용한다”며 “사람 사는 곳이라면 그곳이 주택이든 그렇지 않든 최저주거기준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박동수 서울세입자협회 대표는 “주거기준법에는 최저주거기군을 국토부장관이 결정·고시하도록 돼 있지만 선언적인 의미뿐”이라며 “주거기준법에서 최저주거기준법을 떼어내 입법화할 수 있도록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이날 오후 6시30분부터 고시원 앞에서 제천 화재참사 희생자 유가족과 고시원 화재 참사 피해 생존자들이 참석하는 가운데 희생자 49재와 추모 문화제가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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