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계질서·행동강령 탓에 보복폭행 주고받은 철없는 조폭들

  • 뉴시스
  • 입력 2018년 12월 27일 16시 18분


“감히 선배한테 대들어. 따라와.”

지난달 24일 오전 2시께 광주 서구 상무지구 모 술집에서 수도권과 광주지역 조직폭력배 수십 여 명이 술잔을 기울였다.

광주 모 폭력조직 행동대원 부모의 결혼식을 앞두고 조직의 세를 과시하며 축하하는 자리였다. 해질 무렵부터 자리를 옮겨가며 이어진 술자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과음이 문제였다. 당시 만취상태였던 인천 모 폭력조직원 A(25)씨는 “담배를 피우고 싶다”며 술집 창문을 열었다.

A씨는 “날씨가 추우니 다른 손님들을 배려해달라”는 종업원과 승강이를 벌였다. 이내 탁자를 엎고 욕설을 퍼부었다.

동석해 있던 광주 폭력조직원 B(23)씨는 “좋은 날 이러시면 안 됩니다. 형님이 참으십시오”라며 A씨의 행패를 말렸다.

A씨는 “후배가 감히 선배에게 대든다”며 화를 냈다.

폭력조직 소속은 다르지만 일반적인 행동강령(선배 말에 무조건 복종하고 묻는 말에만 대답한다 등)에 따른 예의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A씨는 술집 주변 골목으로 B씨를 불러 주먹질을 했다. 이를 본 광주 폭력조직원 6명은 같은 장소에서 집단으로 A씨를 마구 폭행했다.

신체 여러 곳을 다친 A씨는 같은 날 오전 3시께 “축하해주러 광주를 찾았는데, 광주 애들한테 뭇매를 맞았다”며 인천의 동료 조직원에게 연락했다.

곧바로 ‘광주 출동 지령’이 떨어졌다. 서울·인천·부천 6개파 조직에서 A씨 후배로 꾸려진 보복 원정단 17명이 차량 여러 대를 몰고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결혼식 참석을 위해 광주에 미리 와 있던 수도권 조폭 10명과 원정에 나선 17명까지 총 27명이 북구 한 모텔에 모였다.

이들은 객실 6개를 빌린 뒤 모텔 사장에게 “CCTV 구입비”라며 70만 원을 건넸다.

CCTV 본체를 뜯자마자 광주 조폭들에게 연락해 “A씨를 때린 행동대원들을 당장 데려오지 않으면 결혼식을 방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같은 날 오전 11시께 모텔 주차장으로 차량 한 대가 급하게 들어섰다. 운전석에서 광주 조폭 C(24)씨가 홀로 내렸다.

C씨의 부모는 4시간 뒤 모텔과 500여m 떨어진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다. C씨는 “부모님이 그동안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다. 식만 잘 마치게 해달라”며 간절히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수도권 조폭들은 광주 조폭과 마찬가지로 ‘상대 조직원에게 맞으면 반드시 보복한다’는 행동강령을 따랐다.

C씨를 무릎 꿇리게 한 뒤 트렁크에서 야구방망이와 삼단봉 등을 꺼내 협박했다. 광주 조폭에게 맞았던 A씨는 C씨의 뺨을 5차례 때리기도 했다.

정오가 넘어 1시간 이상 감금·협박이 이어졌다. 수도권 조폭들이 결혼식장을 찾아갈 경우 조폭 간 패싸움도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여러 경로로 첩보를 입수한 경찰은 비상소집 직후 모텔 주차장으로 향했다. 수도권 조폭 27명 중 15명은 경찰이 현장을 찾기 직전 달아났고, 12명이 붙잡혔다.

경찰은 5개반 형사 38명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한 달간 도주한 조폭들을 쫓았다. 조폭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부터 통신 기록까지 꼼꼼하게 살폈다.

휴일도 반납하고 밤샘 잠복 근무를 이어간 끝에 지인과 여자친구 집 등을 전전하던 수도권과 광주지역 조폭들을 차례로 검거했다.

조폭들은 구속될 것을 우려해 여자친구에게 “연락을 자주 못한다”는 말을 남기고 잠적하는가 하면, 별정통신사에서 다른 사람 명의로 전화를 개통하기도 했다.

광주경찰청은 27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단체 등의 구성·활동 등의 혐의로 수도권 조폭 26명과 광주 조폭 7명을 붙잡아 이중 25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행방을 감춘 조폭 2명도 추적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조폭들이 자신이나 가족의 행사를 빌미로 지역 내 조직의 위상을 높이고, 타 지역 폭력 조직과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전국 각지의 또래 조폭들을 초청해 세를 과시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조직별로 구성원 간 위계질서를 확립하는 행동강령을 세우고 있는데, 강령 내용이 대부분 비슷한 편”이라며 “7개파 조직원들이 행동강령을 지키려다 집단 난투극으로 이어질뻔 했지만, 비교적 빠른 대응으로 충돌을 예방했다. 보복행위에 대한 사회적 위험성과 시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광주=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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