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가 심층 면접한 20대 100명은 정부와 정치권에서 청년 관련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이 거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거대 담론만 난무할 뿐 취업 준비와 생활 안정 등 당장의 일상에 필요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본보는 이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소소하지만 확실하고 실현 가능한(소확실)’ 대안을 꼽아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채용 불합격 시 낙방 이유 공개, 지방 거주자 면접 시간 오후 배정, PC방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안전을 위한 신고벨 설치 등 참신한 제안이 많이 나왔다.
○ “채용 불합격한 이유 알려 주세요”
20대 응답자들 중 상당수는 수십 회 채용에 떨어진 경험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최근 끊이지 않는 채용비리 뉴스를 접하며 채용 과정을 신뢰하기 어려워졌다는 불신을 내비쳤다. 마땅한 이유도 모른 채 낙방을 반복하는 것에 대한 막막함도 호소했다. 취업준비생 조현아 씨(27·여)는 “면접은 계속 떨어져도 왜 떨어졌는지 알 수가 없다. 회사에서 불합격 이유를 알려준다면 다음 취업 준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정민 씨(27)는 “이미 해당 직종에 대해 충분히 경험한 사람들이 경험이 없는 지원자에게 압박면접 방식으로 ‘갑질’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며 “진짜 경험하고 배우는 시간이 되기 위해서는 탈락한 이유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 거리를 고려해 지방 거주자는 면접 시간을 오후로 해 달라”는 제안도 나왔다. 취업준비생 임형준 씨(27)는 “지방에 사는 사람은 면접을 아침에 보게 되면 전날 올라가서 숙소를 구해 자야 한다. 오후로 시간을 미뤄주면 더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 응답자들의 경우 채용 과정에서 성차별을 막을 장치를 마련해 달라는 의견이 많았다. 남성과 여성의 지원 비율과 합격자 비율을 각각 공개해 달라는 요구였다. 면접 과정에서 ‘성희롱 질문’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지원자의 외모를 평가하거나 남자친구 유무를 묻는 질문을 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중소기업에서 일할 수 있게 근무 환경을 개선해 달라는 제안도 많았다. 현재 정부 정책은 정규직 사원을 채용한 중소기업에 대한 세액공제나 취업자 현금 지원 등 경제적 지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중소기업에서 퇴사한 김나영 씨(25·여)는 “대기업은 입사 후 실무 노하우를 알려주는 기간이 있지만 중소기업은 그런 게 없다”며 “업무 매뉴얼의 체계적인 인수인계 등 근무 여건을 개선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재민 씨(26)는 “중소기업 업무 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지나친 야근을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 “위험 아르바이트에 신고벨 설치해 주세요”
술집, PC방, 야간 편의점 등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 많기 때문인지 사건 사고 예방에 대한 요구도 많았다. 이들은 위험 상황을 즉각 알릴 수 있도록 신고벨을 설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소진 씨(24·여)는 “서비스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위험 고객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0대 하청 근로자 김용균 씨가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 점검 도중 숨진 사건 이후 안전 설비를 강화해 달라는 목소리도 높았다. 생산직 종사자 유지현 씨(27·여)는 “몸이 기계에 끼일 경우 이를 감지해 자동으로 멈추는 안전센서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 건설업 근로자에게 안전교육 비용을 지원해 달라는 요구도 있었다. 현재 사업자가 부담해야 하는 기초안전보건교육비는 3만∼5만 원 수준인데 이를 지키지 않아도 과태료 5만 원 처분에 불과해 근로자가 교육비를 내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일용직으로 일하는 이모 씨(29)는 “막노동을 하는 청년들은 주머니 사정이 안 좋다. 몇만 원이라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 “몰카 안전지역 ‘구글 지도’로 만들어 주세요”
주거 안정도 20대들에겐 시급한 문제다. 저렴한 청년 임대주택의 공급과 기숙사 확대를 촉구하는 제안이 많았다. 이지은 씨(25·여)는 “취업준비생에겐 고시원도 비싸다. 청년을 위해 저렴한 집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승현 씨(20)는 “정부에서 공유주택 같은 새로운 대안을 내놔야 주거 문제가 조금은 나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성평등 부문에서는 지난해 이어진 대학가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을 반영하듯 교수 강의평가에 젠더 감수성 문항을 넣어달라는 제안이 나왔다. 취업준비생 구현진 씨(22·여)는 “교수나 강사가 성차별 발언이나 성희롱을 하는지를 5개 구간으로 나눠 점수를 매기면 예방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과 경찰이 협력해 ‘몰카 불법촬영 안전지역 지도’를 만들어 달라는 의견도 있었다. 이는 지난해 12월 연세대 총여학생회가 서울 서대문경찰서와 협력해 서울 신촌 일대 사업장 118곳의 불법촬영 카메라를 탐지한 뒤 ‘불법촬영 안전지역 지도’를 만든 사례에서 착안한 것이다.
윤다빈 empty@donga.com·김은지 기자 염정원 기자
※본보의 ‘전국 20대 100명 심층 인터뷰’는 강동웅 공태현 김소영 남건우 박상준 박선영 신아형 여현교 염정원 이소연 최수연 기자가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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