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감사합니다. 남들은 제 나이에 혈압도 안 좋고 당뇨도 있는데, 저는 축복받아 다른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신장을 기증하기로 한 안병연 씨(59)가 수술을 하루 앞둔 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이같이 심경을 밝혔다. 3일 낮 12시부터 시작되는 수술이 무사히 끝나면 안 씨는 올해 첫 순수 신장기증자가 된다. 순수 기증은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장기를 기증하는 것을 말한다. 안 씨의 신장은 1999년 만성신부전증 진단을 받고 2001년부터 투석을 받아온 장모 씨에게 전달된다.
경기 수원시의 한 아파트 상가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안 씨가 신장을 기증하기로 결정한 배경엔 먼저 세상을 떠난 누나의 영향이 컸다. 안 씨는 2일 “1998년 다니던 전자부품회사에서 해고당한 뒤, 운동이나 하자고 올라간 산에서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플래카드를 보고 장기이식에 대해 알게 됐다”며 “내가 먼저 본부에 사후 장기기증 희망 등록을 했다. 그 사실을 가족들에게 얘기하니 누나가 좋은 생각이라며 ‘나도 하고 싶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2002년 7월 안 씨의 누나 병순 씨(당시 63세)는 교통사고로 숨졌다. 안 씨는 “트럭이 누나를 치었는데, 트럭 운전하는 분 부부가 5일장 다니면서 먹고 살던 분이었다. 보험도 안 들었다”고 했다. 황망한 상황에서도 안 씨는 누나가 장기기증을 희망했다는 사실을 떠올렸고 가족들을 설득했다. 결국 가족들의 결정으로 병순 씨의 신장과 각막 등을 4명에게 기증했다.
누나가 떠난 뒤 안 씨는 주변을 살피며 살았다고 했다. 안 씨는 노숙인을 돕는 경기 수원시 나눔의집에서 무료 급식봉사를 시작했고, 교회에서 배운 기술로 2012년부터 시작한 세탁소 일이 익숙해지자 기부도 했다고 한다. 헌혈도 67차례나 했다. 안 씨는 “더 많은 사람을 돕고 싶어 교회에서 기도를 하던 중 장기기증이 떠올랐고 누님이 생각났다”며 “누님은 돌아가시며 4명을 구했는데 살아서 한 명의 생명이라도 구해야겠다는 마음에 지난해 6월 신장기증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안 씨의 신장을 기부 받는 장 씨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저를 위해 기꺼이 수술대에 오르겠다고 나선 기증인의 뜻을 받아들여 앞으로 건강하게 살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신장 순수기증자는 해가 갈수록 줄고 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신장 순수기증자는 2명뿐이었다. 2015년(7명) 2016년(4명) 2017년(6명) 등 감소세다. 처음 캠페인을 시작한 1991년 20건의 순수 기증이 있은 뒤 2011년까지는 한해 평균 45명이 생면부지 타인에게 신장을 기증했으나, 2011년 이후 한해 평균 8건으로 줄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