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시험 합격률 50%대 붕괴…로스쿨 학생들 새해 첫날부터 ‘열공’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4일 17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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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월 1일에도 우리 ‘열공’합시다!”

1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 A 변호사시험 준비학원 대강의실. 변호사시험 대비반을 가르치는 변호사 출신 강사가 수업 시작을 알리자 강의실을 가득 채운 수강생 100여 명이 두꺼운 법전을 꺼내들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다니고 있는 재학생뿐 아니라 올 3월 입학이 예정된 로스쿨 ‘예비 신입생’들도 다수였다.

변호사시험에 대비해 각종 연습 문제를 풀어보는 수업이 이어졌다. 강사는 “재학생들뿐만 아니라 신입생들도 문제를 미리 풀어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은 강의 내용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손을 바삐 움직여 필기했다. 스마트폰을 하거나 잠을 자는 수강생은 단 한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후 1시 40분 시작한 수업은 약 3시간 만인 오후 5시 30분 끝났다. 그러나 학생들은 다시 책을 들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움직였다. 이 학원에서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운영하는 독서실로 가기 위해서다. 새해 첫 날임에도 독서실은 붐볐다. 빈 강의실을 자습실로 사용하는 모습도 보였다. 지난달 17일 개강한 이 강의는 일요일만 제외하고, 주6일 개설되어 있다.

수업에 참석한 한 로스쿨 예비 신입생은 “지난달 로스쿨 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갈수록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떨어진다는 생각에 바로 학원에 등록했다”며 “변호사시험에 떨어지면 로스쿨에 낼 매년 1000만원 안팎의 등록금과 3년의 시간을 낭비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미리 준비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 ‘기본 3법’ 수강료만 180만 원

로스쿨 예비 신입생들이 입학 전 겨울부터 ‘선행학습’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50% 이하로 떨어진 뒤 로스쿨에 들어가도 변호사 자격증을 못 딸 수 있다는 불안감이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예비 신입생들은 “입학 전부터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변호사시험 합격은 어렵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A 학원은 지난해 12월부터 로스쿨 예비 신입생들을 위한 ‘종합반’을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로스쿨 재학생을 위한 학원 강좌는 있었지만 예비 신입생을 위한 강좌가 열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입문, 기본, GPA(학점) 관리, 법학실무 등 과목을 온·오프라인으로 제공하는데 수강료는 149만 원에 이른다. A 학원은 홈페이지에서 ‘남들보다 한발 빠른 선행학습으로 로스쿨 상위권을 선점해야 한다. 빠른 선행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홍보하고 있다.

B 학원은 지난해 12월 ‘로스쿨 신입생을 위한 기본강의’를 개설했다. 민법 85만 원, 형법 70만 원, 헌법 27만 원 등 이른바 ‘기본 3법’ 강의를 다 들으면 180만 원 가량이 든다. 수업은 일요일을 빼고 매일 진행하고, 새해 첫날인 1일에도 열렸다. 이 학원은 강좌를 듣는 수강생들에게 인근 독서실 할인혜택을 제공한다.

C 학원도 지난달 19일부터 예비 신입생들을 위한 ‘겨울방학 기본강의’를 열었다. 변호사시험과 로스쿨 학점을 관리하기 위한 선행학습이 필요하다며 ‘차분히 기본서를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은 겨울방학 외에는 많지 않다’고 강조한다. 예비 신입생 박모 씨(28)는 “서울 소재 로스쿨에 합격하지 못해 학기가 시작되면 변호사시험 준비 학원을 다닐 수 없을 것 같다”며 “가격은 부담되지만 입학 전에라도 학원을 다녀 준비를 하자는 마음에 등록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관악구 신림동 학원들도 발 빠르게 로스쿨 예비 신입생 모집에 나섰다. 사법시험 준비 학원들이 사시 폐지와 함께 변호사시험 준비학원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수강생들 사이에선 ‘신림동 변시촌’이 새로 생기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학원에 다니지 못하는 예비 신입생들은 자체적으로 스터디를 하기도 한다. 입학 전 등록금을 더 모으기 위해 직장을 아직 그만두지 못하는 이들이다. 4~5명이 각좌 온라인 강좌를 듣고 선행학습을 한 뒤 ‘스터디 카페’에 모여 2시간씩 공부한다. 서로 모르는 내용을 가르쳐주고 숙제를 내는 방식이다.

● 학원가 호황 이유는 ‘떨어지는 합격률’

예비 신입생들이 학원으로 몰려가고 ‘스터디’까지 꾸리는 건 갈수록 떨어지는 변호사 시험 합격률 때문이다. 2012년 제1회 시험 때만 해도 87.2%에 달했던 변호사시험 합격률은 계속 하락해 지난해 제7회 시험 땐 처음으로 절반 이하인 49.4%를 기록했다.

이번 달 1월 8일~12일 열리는 8회 시험에도 응시자의 절반 이상이 탈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제8회 시험 응시자는 3617명이다. 지난해 응시자수인 3490명보다 127명이 늘어난 역대 최다 인원이다. 합격자 수가 아직 정해지진 않았지만 지난해 합격자수인 1599명에 비춰보면 올해 합격률이 50%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서울 소재 로스쿨과 지방 소재 로스쿨의 변호사시험 합격률 편차가 해를 거듭할수록 벌어지고 있는 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합격률이 벌어지니 지방 소재 로스쿨 학생들은 방학마다 학원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로스쿨에서 벌어진 차이를 학원에서 좁히겠다는 생각이다.

제1회 시험 합격률 1위 경희대, 아주대(이상 100%)와 최하위 충북대(63.33%)의 격차가 36.67%포인트였다. 반면 제7회 시험에서는 1위 서울대(78.65%)와 최하위 원광대(24.63%)의 합격률 차이가 54.02%포인트였다. 지방 소재 로스쿨 예비 신입생은 “변호사 시험 합격률이 떨어지다 보니 ‘학문 위주’의 수업보다는 변호사 시험 합격비법이 더 중요하다. 지방 소재 로스쿨에 갈 생각을 하니 학교보단 학원에 눈길이 더 간다”고 말했다.

로스쿨 내부에선 학생들이 변호사시험 과목에 포함되지 않는 과목을 아예 수강하지 않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로스쿨 교수들도 이미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다. 한 지방 소재 로스쿨 교수는 “변호사시험과 관련 없는 과목은 학생들이 제대로 공부하지도 않고 있다. 다양한 법조인을 양성한다는 로스쿨 설립 취지가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 “합격률 높여야” VS “로스쿨 통폐합”

법무부가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제한하는 건 ‘시장 포화’를 우려해서다. 로스쿨이 도입된 후 변호사 수가 늘면서 2016년 2만 명을 넘어섰다. 로스쿨 입학생들이 모두 졸업한 뒤 변호사가 되면 이미 포화상태인 변호사 시장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해결책은 단체마다 엇갈린다. 로스쿨 단체는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높여야 각종 병폐가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의사나 약사, 치과의사가 학교를 다니다 일정한 성적만 받으면 자격을 주는 것처럼 변호사도 자격시험화를 추진해야 변호사시험에 목을 매는 현상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김순석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은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높여 변호사 수가 많아지면 시장 경쟁 원리 따라 법률서비스의 질이 높아진다. 정부가 변호사들이 민간 기업에 다양하게 진출할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국내 최대 변호사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 측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로스쿨을 통폐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본이 한국보다 5년 앞선 2004년 로스쿨을 도입해 최대 74개 학교를 운영하다 변호사 시험이 포화되자 절반 수준인 37개로 낮춘 점을 본받자는 것이다. 김현 대한변협 회장은 “현재 증가 추세라면 2022년경에는 변호사 수가 3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며 “로스쿨 입학 정원은 점진적으로 1500명, 연간 배출 변호사 수를 1000명 수준으로 감축해야 한다. 전국 로스쿨을 과감하게 통·폐합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호재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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