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살 딸이 “엄마, 입술 발라야 예뻐지지”…유아까지 파고든 화장 유혹

“엄마, 나 이거 보라색으로 칠하면 너무 예쁘겠다.”

며칠 전 경기도 대형 쇼핑몰의 한 장난감 가게. 많아야 6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화장대 앞에서 매니큐어를 바르며 들뜬 목소리로 엄마에게 말했다. 아이의 발길을 멈추게 한 화장대는 크기만 다를 뿐 성인 여성이 사용하는 화장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쪽 벽면엔 색색의 화장 가방, 화장 도구 세트 등이 즐비했다. 6만원대인 한 ‘네일아트(손톱 꾸미기) 가방’엔 실제로 사용 가능한 인조 손톱, 손톱 정리 도구, 매니큐어, 손톱 드라이어, 손톱 장식용 스티커·반짝이 등이 담겼다.

여아가 ‘공주’를 꿈꾸고 화장에 흥미를 가지는 게 최근에서야 일어난 현상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플라스틱 모형 화장품으로 화장 흉내를 내고 놀았던 이전 세대와는 양상이 다른다. 유아들이 실제로 성인처럼 화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유튜브의 여아 겨냥 화장 영상과 각종 키즈 메이크업(어린이용 화장) 상품이 맞물리면서 여아들은 성인 화장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고, 이른바 ‘외모 코르셋’을 강요 당하는 연령대가 급기야 유아로까지 내려왔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외모 코르셋’은 여성이 아름다운 외모를 가져야 한다는 사회적 강박을 뜻한다.

실제로 오픈마켓 11번가에 따르면 어린이용 화장품의 2018년 판매액은 전년 대비 4.4배 폭등했다.
유아들의 유튜브 스타인 ‘헤이지니’가 화장 영상을 올릴 때는 댓글창에서 논쟁이 벌어진다.

지니가 콩순이 인형에 “이걸 하면 예뻐질 거야”라고 끊임없이 말하며 볼과 입술을 빨갛게 칠해주는 영상의 댓글창엔 여아에게 외모 코르셋을 강요하지 말라는 댓글이 달린다. “어릴 때부터 이런 미디어에 노출되는 아이들을 생각해달라”, “애기들 얼굴에 립스틱 바르는 걸 좋다고 박수치고 있다. 구역질 난다”는 댓글을 볼 수 있다.

부모들이 우스갯소리로 ‘여자아이들의 정신적 지주’라고 말하는 시크릿쥬쥬의 ‘비타민 톡톡 시크릿 화장가방’ 광고는 “비타민을 톡톡. 너도 예뻐져 봐”란 말로 끝을 맺는다.

4살 딸을 둔 이미연(30)씨는 “저런 광고가 텔레비전에 버젓이 나온다는 게 너무 당황스럽다”며 “10살도 안 된 아이들에게 무슨 비타민 보습 크림이 필요하다는 것이냐”라고 반문했다.

김정연(29)씨의 3살 딸은 김씨가 화장을 하지 않고 외출을 하려고 하면 “엄마, 입술 발라야 예뻐지지”라고 말한다. 김씨는 “아빠의 외모 이야긴 하지 않지만 내 외모에 대해서는 말을 많이 한다. ‘여자는 화장해야 예쁘다’는 인식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김씨는 “자기가 예쁜지 물어보고 못생겼다고 하면 너무 싫어한다”며 “내가 무의식중에 ‘엄마 예뻐지려고 화장하는 거야’라고 한 게 아이에게 악영향을 끼쳤나 싶고, 교육을 잘 해야겠단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여아들이 ‘아름다운 외모’로 대표되는 정형화된 여성성을 가져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유튜브와 화장품이라는 거대한 두 가지 산업이 공조해서 여아의 화장을 부추기고 있다”며 “어릴 때부터 공주를 꿈꾸면서 결국 외모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고 짚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이들이 어떤 가치를 지닌 사람이 돼야 할지가 중요한데, 외모가 모든 것이란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우려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