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역외상센터는 외과 의사가 기피하는 근무지다. 치료하기가 어려운 중증외상 환자가 몰리는 데다 만성적인 인력 부족으로 업무 강도가 상상을 초월하는 탓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환자가 몰리는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 당당히 도전장을 낸 새내기 임상강사(펠로)가 있다. 외과 지원자가 점차 줄어드는 세태 속에서 지난 5년간 이국종 외상외과 교수를 비롯한 아주대병원 의료진의 가르침을 받고 올해 3월부터 정식 임용될 박지예 씨(32·여)가 그 주인공이다.
3일 아주대병원에서 만난 박 씨는 체격은 깡마르고 눈 밑엔 다크서클이 짙었다. 그는 “전공의(레지던트) 4년을 거치며 살이 5㎏ 정도 빠졌다”며 웃었다. 날카롭게 보일 수도 있는 첫인상과 달리 동료 의료진은 박 씨를 ‘털털이’라고 부른다. 임상현 흉부외과 교수는 “고된 트레이닝을 꿋꿋이 버텨준 멘털(마음가짐)이 좋은 제자”라고 평했다.
박 씨는 2007년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수업 중 중증외상 환자의 응급수술을 참관하고 강렬한 인상을 받아 중증외상 치료에 관심을 갖게 됐고 2014년 “외상 치료를 가장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이라는 주위의 권유에 아주대병원 수련의(인턴)로 지원했다. 이국종 교수는 “외과를 선택하는 의대생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던 상황에서 박 선생이 너무 기특하고 고마웠다”고 회상했다. 이 교수와 임 교수는 박 씨가 2015년 흉부외과 레지던트 생활을 시작하자 특별히 외상센터 파견 과정을 신설해 주기까지 했다.
박 씨를 설레게 했던 순간은 몸의 형체가 온전히 남은 게 거의 없을 정도로 크게 다친 환자의 숨을 다시 돌려놓을 때다. 고층에서 떨어져 골반이 부서졌던 40대 여성, 폐가 제 기능을 못 했던 50대 남성…. 수술이 고될수록 환자가 말짱하게 회복해 퇴원할 때의 보람은 더 컸다.
그랬던 박 씨도 3년 전 중증외상 치료의 길을 포기할 뻔했다. 눈앞에서 환자들이 숨져 가는데 자신의 실력은 늘지 않는 것 같은 좌절감 때문이었다. 그때 마음을 다잡아준 이가 이국종 교수였다. 이 교수는 권역외상센터 옥상에 새로 생긴 헬기장으로 박 씨를 데려가 “우리 외상팀이 포기했다면 이 헬기장은 끝내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박 씨가 상처 봉합을 어려워하자 이 교수 자신이 레지던트 시절에 익혔던 요령을 손수 가르쳐 주기도 했다.
인터뷰 내내 “나는 아직 서툴다. 한참 멀었다”며 한숨을 쉬던 박 씨는 “코드 블루(심정지 환자 발생을 뜻함)”라는 의료진 호출 방송이 나오자 돌연 말을 멈추고 집중했다. 그 순간 ‘털털이’ 박 씨의 눈은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
▼ 인력난에 외과전공의 충원율 78%▼
올해 전국 수련병원 81곳에 지원한 외과 및 흉부외과 전공의(레지던트)가 정원보다 50명이나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는 외과 및 흉부외과에서 레지던트 지원자가 176명으로 정원(226명) 대비 충원율이 77.9%에 그쳤다고 6일 밝혔다. 이 비율은 2017년 83.9%, 지난해 83.1%에 이어 계속 줄어들고 있다. 정부가 외과 전공의의 수련기간을 4년에서 3년으로 단축해 주기로 했지만 효과가 별로 없었다. 밤낮없이 어려운 수술을 맡아야 하는 데다 대형병원에서 퇴직하고 나면 갈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중증외상 환자를 최일선에서 치료하는 권역외상센터의 인력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국 권역외상센터 9곳 중 필수과목(외과, 흉부·정형·신경외과) 전담의를 모두 정원대로 갖춘 곳은 1곳도 없다. 아주대병원에선 1명뿐인 흉부외과 전담의가 지난 5년간 24시간 온콜(on-call·비상대기) 상태로 지냈다. 다른 병원에선 일반 병동의 전문의가 대신 권역외상센터 당직을 서고 다음 날 졸린 눈을 부비며 정규 수술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배금석 대한외상중환자외과학회장(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은 “권역외상센터 전담의의 인건비 지원액을 높이고 임상강사(펠로)에게 교수 신분을 약속해주는 등의 ‘당근’을 제시하지 않으면 10년 후엔 의사가 없어 응급 수술을 못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2
추천 많은 댓글
2019-01-06 20:59:55
진정한 애국의 길을 가는 사랑스런 사람들!!
2019-01-06 21:36:59
멋진은 한때다, 곧 대우 못받고 사회생활 해봐.ㅋㅋ 눈물 날끼야 선택의 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