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신 운전자를 대신해 자신이 운전했다고 수사기관에 거짓말을 하고 음주측정까지했다면 범인도피죄 처벌 대상이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설령 음주운전으로 볼 수 없는 수치가 나오더라도 측정 전에는 이 사실을 알 수 없으므로 일종의 수사 방해로 볼 수 있다는 취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6단독 곽경평 판사는 범인도피 등 혐의로 기소된 안모(26)씨에 대해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120시간을 명령했다고 17일 밝혔다.
안씨는 지난해 3월11일 새벽 술에 취한 지인 한모(24)씨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가던 도중 교통사고로 음주 측정을 받게 되자, 자신이 운전한 것처럼 거짓말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안씨 측은 “한씨의 혈중알콜농도가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에 해당할 정도는 아니어서 범인도피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곽 판사는 “한씨의 혈중알콜농도에 대한 객관적인 측정 자료가 없어 도로교통법에서 운전을 금지하는 수치에 이르렀는지에 대해서는 현재 알 수 없다”면서도 “당시 한씨는 술을 마신 상태에서 운전을 했으므로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죄에 해당할 여지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곽 판사는 또 “음주운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는 음주측정을 통해 수사할 필요성이 있었는데도 안씨가 당시 운전면허도 없는 상태에서 무면허운전으로 처벌받는 것까지 감수하면서 마치 자신이 차량을 운전한 것처럼 수사기관에 허위로 진술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형법이 정한 범인도피죄는 범인에 대한 수사, 재판 및 형의 집행 등 형사사법의 작용을 곤란 또는 불가능하게 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라며 “(안씨가) 수사기관을 기만해 착오에 빠지게 함으로써 한씨의 음주운전 혐의에 대한 수사를 방해 또는 곤란하게 해 수사대상이 돼야 할 한씨를 도피하게 한 것이므로 범인도피죄가 성립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안씨가 범행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스스로 수사기관에 허위로 진술한 사실을 밝힌 점, 상해죄로 인한 두 차례의 벌금형 전과 이외에 다른 형사처벌 전력은 없는 점, 그 잘못을 인정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한편 안씨에게 음주측정을 대신해달라고 부탁한 한씨는 특수상해, 범인도피교사 등 혐의로 기소돼 지난달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범인도피교사 혐의에 대해서는 이번 판결과 같은 결론이다.
앞서 한씨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제추행) 등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의 확정 판결을 받은 뒤 수감생활을 마치고 나와 이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