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기해년(己亥年)은 2018 동계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된 지 1년을 맞이한 해다.
백두대간의 웅장한 절경과 그에 어우러진 최고의 경기시설들이 세계인들의 올림픽 찬사를 유도했지만 가장 중심부에는 혹한에서 버텨야 했던 지역민들의 간절한 소망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찬란한 햇살 아래 있어도 그림자는 항상 지듯, 특히 지난 올림픽 알파인스키경기 성공 개최의 무대를 담당했던 정선 가리왕산이 이제는 올림픽이 열렸다는 흔적조차 사라질 위기를 맞았다.
올해 가리왕산의 수식어는 ‘갑론을박(甲論乙駁)의 무대’가 어울리지 않을까. 올림픽 전후 산림청과 강원도의 ‘떠넘기기’ 식의 행정이 지금의 위기를 초래한 것은 아닐까.
올림픽 1주년을 맞이한 이 때. 20여 년 전부터 행정의 입맛에 맞게 이리저리 휘둘렸던 가리왕산의 아픈 과거사를 한 번 되짚어봤다.
◇산림청, 어디까지가 원리원칙??20년 전엔 주민들이 가리왕산 지켰다
1996년 가리왕산의 조목만을 기준으로 106ha가 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됐고 1997년에는 산림청 야생조수보호증식장 조성사업이 착수됐다. 이어 1999년 산림청의 산림자원 생태관찰원 조성 용역 결과에 따라 야생조수보호증식장에서 산림자원 생태관찰원으로 변경됐다.
20여 년 전 산림청이 당초 야생조수보호증식장 조성 계획을 밝혔을 당시 논란은 있었지만 이 때만해도 주민들의 의견은 어느 정도 먹혔었다.
사실상 야생조수보호증식장은 유전자원보호구역 산지 내에 울타리(철책) 37km를 쳐서 수렵장을 조성하겠다는 사업이었다.
이 당시 정선군민들은 상수원 오염, 자연훼손, 입산애로 등을 내세워 즉각 반발했다. 결국 산림청과 수차례 협의 끝에 야생조수 보호 증식 및 수렵을 제외하고 희귀식물을 증식하는 산림생태관찰원으로 사업 변경됐다.
현재 유전자원보호구역이란 명목으로 가리왕산 전면복원을 강하게 앞세우는 산림청의 논조와 상반되는 사업이기도 하다. 결국 산림청은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울타리 11km를 철거했다.
하지만 20여년이 지난 현재, 문재인 정부의 핵심 키워드인 ‘소통’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던 때임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성공개최 무대였던 가리왕산이 ‘불통’ 행정 아래 올림픽의 그림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위기에 몰렸다.
2013년도에는 동계올림픽 활강경기장 편입부지를 조성한다는 사유로 정선군 북평면 숙암·나전리·회동리 일대 78ha를 해제함에 따라 2015년도에는 평창군 대화면 하안미리와 정선군 정선읍 회동리 일대 583ha를 대체지로 지정했다.
사후활용으로 경기장 곤돌라와 운영도로 존치를 주장하는 정선군민들은 “산림청에서 유전자보호구역 체육시설부지는 포기한 것이 분명한데 이제 와서 원상복원주장은 권력과 법을 내세워서 약자인 지자체를 압박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며 “산림청이 우려하는 환경피해에 대해 정선군민이 합리적인 복구에 동의하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원상복원을 앞세우는 산림청의 주장은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에 산림청은 “산림유전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2020년까지 국유림 640만ha 중 17%를 목표로 점차적으로 유전자원보호구역을 확대지정하고 있는 추세다”며 “올림픽 부지도 보호해야할 산림자원이 있기 때문에 확대 지정한 것이지 올림픽 활강경기장 편입부지의 대체지로 바라봐선 안 될 것 같다”고 반박했다.
◇강원도 “나름 사정있었다”
산림청은 전면복원 전제조건을 내세우며 올림픽 대회 전 사후활용 계획안을 산림청에 제때 제출하지 못한 강원도의 처신을 꼬집었다.
산림청 관계자는 “동계올림픽 특별법을 제정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산지관리법에 제한되는 사항을 개정하기도 했다. 그 전제가 사후 활용을 할 때 전면복원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었다”며 “동계올림픽 특별법에 따라 대회 전 올림픽 대회지원위원회에 올림픽 경기장 시설 사후활용에 대한 대회지원 안건으로 올려 승인을 받으면 해결될 문제인데 강원도가 이를(제출 타이밍) 지키지 못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림픽 사후활용과 전면복원 등에 대한 모든 비용과 부담은 강원도가 책임져야 한다’는 중앙정부의 거센 입김에 강원도의 볼멘소리도 나름대로 커지고 있다.
강원도 관계자는 “산림청, 강원도, 정선군, 환경단체 등 수많은 이해관계들이 이곳에 얽혀 있어 만약 대회 전에 사후활용 계획안을 발표했다면 개최되기도 전에 분쟁이 일어났을 것”이라며 “충분치 않은 공사기간 안에 인허가 절차들까지 지연되다 보니 더욱 촉박할 수밖에 없을뿐더러 사후활용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고 이를 중앙정부에서 모른척하는 부분이 많이 아쉬울 따름이다”고 토로했다.
◇사후활용 계획 담긴 IOC 비드파일 법적 효력 있나?
강원도가 2011년 1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제출한 비드파일(Bid-File)에는 가리왕산 일원에 신설되는 알파인 경기장에 대해 대회 종료 후에도 경기장을 존치, 합리적으로 사후 활용하겠다는 계획이 담겼다.
IOC도 이에 동의했고 2011년 7월6일(현지시간)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제123차 IOC총회에서 2018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을 최종 확정했다.
최근들어 이 비드파일에 담긴 내용이 IOC와의 국제적 약속 사안으로 부각되지만 국내 법안에 접촉되는 사안이 없어 과연 효력이 있을지 의문이기도 하다.
산림청 관계자는 “비드파일에 담겼다는 내용으만로는 법적 구속력이 없고 비드파일 계획에 달성할 수 있게끔 국내 제도 정비가 수반됐었어야 했지만 강원도가 이를 이행하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며 강원도 책임론을 어필했다.
올림픽 조직위 관계자는 “개최도시 계약서를 보면 비드파일 안에는 내용을 성실히 수행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고 IOC가 도장을 찍었기에 승인과 동의라는 의미가 포함된 것이다”고 말했다.
공직에 있는 한 관계자는 “중앙정부, 강원도, 정선군 모두가 사전에 올림픽 사후활용까지 생각하며 대회를 추진했어야 했는데 너무 급하게 왔던 것이 오늘날의 문제로 이어졌다”며 아쉬워했다.
한편 산림청은 31일 이후에도 강원도의 전면복원 이행 의사가 없을 시 행정대집행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혀 지역주민과의 물리적 마찰도 예상되는가 하면 면밀한 설계 작업이 필요한 곳이라 구체적인 설계 계획 없이 당장 시행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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